[시사쇼]강경화 vs 김현종의 엇갈린 운명

'영어로 싸웠던' 강경화 vs 김현종
강경화는 주미대사, 김현종은 아직
조현 외교 장관은 강경화 대학 후배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오후 4~5시)'

■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지난 18일 주미대사에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이 내정됐다. 그동안 주미대사와 관련해서는 4명 정도가 거론됐다. 강 전 장관, 임성남 전 외교부 1차관,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 그리고 '통상전문가'인 김현종 전 국가안보실 2차장이었다. 특히 김 전 차장의 임명 여부가 주목됐다. 가능성이 크지는 않았지만, 그에 대한 주목도는 높았다. 강 전 장관이 내정되면서 강경화·김현종의 악연도 새삼 부각됐다.

주미대사로 내정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021년 세계경제포럼의 '다보스 어젠다 주간 고위급 회의'에 토론자로 참석했을 때의 모습이다. 연합뉴스

2019년 4월, 강경화 vs 김현종 영어로 다퉈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 4월, 두 사람은 크게 부딪혔다. 그해 9월17일 김 전 차장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하나 올린다. '외교 안보 라인 간의 이견에 대한 우려들이 있는데 제 덕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소용돌이치는 국제 정세에서 최선의 정책을 수립하려고 의욕이 앞서다 보니까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제 자신을 더욱 낮추며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런 내용이다.

김 전 차장이 글을 올린 이유는 전날 국회에서 있었던 일과 관련 있다. 2019년 9월16일 국회에서 외교안보통일위원회가 열렸다.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이 강 전 장관을 상대로 질의했다. "지난 4월, 대통령이 중앙아시아 3개국을 순방했을 때 김현종 2차장과 영어까지 쓰면서 싸운 적이 있지요?" 강 전 장관이 의외의 답변을 했다.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발언이었다. 보통 부인하거나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만큼 두 사람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상징했다. 이후 언론에는 두 사람의 갈등설이 보도됐다. 외교라인 고위 인사들의 불협화음이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을 수행해 순방 실무를 책임졌던 김 전 차장은 외교부 쪽에서 작성한 문건의 수준에 대해 외교부 직원을 다그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 전 장관은 "우리 직원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라며 맞섰고 급기야 두 사람은 영어로 말싸움을 했다. 당시 김 차장이 "It's my style(이게 내 방식이다)!"이라고 했다는 얘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당시 '김현종 외교부 장관 임용설'도 있었던 때라 민감도가 더욱 컸던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 다 영어 구사력 뛰어나지만, 성격은 달라

두 사람은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는 걸로 유명하다. 강 전 장관은 어렸을 때 부친을 따라 미국에서 생활했고, 미국 매사추세츠대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3년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통역을 맡았고, 10년 정도 유엔(UN)에서 근무했다. 김 전 차장은 외교관이었던 부친을 따라 어린 시절을 미국, 일본 등에서 생활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를 졸업했고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꿈도 영어로 꾼다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였다. 스타일도 다르다. 강 전 장관은 부드럽고 섬세하지만, 김 전 차장은 불도저 같은 추진력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10월 16일 청와대에서 신임 주한 오만대사와 기념촬영에 앞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자리 이동을 권유하고 있다. 연합뉴스

'갈등설' 때문인지 문재인 대통령은 2021년 1월20일 두 사람을 교체했다. 임기를 같이할 것으로 점쳐졌던 강 전 장관은 외교부 장관직에서 물러났고, 김 전 차장은 외교안보특보로 옮겼다. 당시 청와대에 근무하며 두 사람을 지켜볼 기회가 많았던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강 전 장관은 빛났고, 김 특보는 막힘이 없었다"고 평가한 적이 있다. 고 의원은 "일본의 수출 규제 문제가 터졌을 때 (김 특보가) 막힘없이 대응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일본의 공격에 몇 달 동안 꽤 대차게 싸워냈던 기억"이라고 회상했다.

외교부는 물론 여권 안팎에서도 김 전 차장에 대한 거부감 상당

크게 싸웠던 강 전 장관과 김 전 차장의 운명은 엇갈렸다. 강 전 장관은 주미대사가 됐다. 반면 중책을 맡을 것으로 여겨졌던 김 전 차장은 아직 공직 임명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일단 외교부 쪽에서 김 전 차장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 강한 성격, '단독플레이 업무 스타일'에 고개를 흔드는 이들이 많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강 전 장관의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후배인 것과 대비된다. 과거 외교부 2차관으로 있던 조 장관을 1차관으로 끌어준 사람이 바로 강 전 장관이었다. 이번에는 조 장관이 강 전 장관에게 주미대사를 맡아줄 것을 권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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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내에서도 김 전 차장에게 우호적인 이들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최근 만난 민주당 핵심 인사는 "문재인 정부 때 김 전 차장과 같이 일해 본 이들은 고개를 흔든다"고 말했다. 대통령도 있는 회의 석상에서 다른 이에게 면박을 주는 언사를 하는 것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 측의 반응도 우호적이지는 않다. 미국은 김 전 차장이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와 관련해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에 불편한 감정을 표현한 적이 있다. 일본 또한 GSOMIA 파기, 수출 규제에 맞섰던 것 때문인지 김 전 차장이 이재명 대통령이 대표 시절 외교안보보좌관이 됐을 때 언론에 비판적인 기사가 보도되기도 했다.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 대통령이 김 전 차장을 등용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든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면 '통상전문가' 김 전 차장이 등판할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편집국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kumkang21@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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