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20년을 넘긴 10개 대형 로펌(김·장 법률사무소, 법무법인 광장, 태평양, 율촌, 세종, 화우, 지평, 바른, 대륙아주, 동인)의 경영전담(총괄) 대표변호사 중 절반 이상이 소속 로펌에서만 줄곧 근무한 이른바 '원펌맨(one firm man)'이었다. 이들 대형 로펌의 중심을 이루는 변호사들이 창립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넘어가면서 자연스레 업무 능력을 인정받은 '공채' 출신들이 경영 전면에도 나서게 된 것으로 분석된다.
10개 대형 로펌 경영전담 대표변호사들의 전문 분야는 절반이 자문, 나머지 절반이 송무로 균등하게 나뉘어 있었다. 업계에서는 로펌 시장이 송무 중심에서 점점 전문화된 자문으로 확장되면서 향후에는 특정 분야 자문 특기를 보유한 '원펌맨'들이 대표에 오르는 경우가 더 많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픽사베이.
"속사정 잘 알아 경영 일선 자연스러워"
'원펌맨'이 최근 전면에 나선 대표적 대형 로펌은 지평이다. 2025년부터 지평을 이끌고 있는 김지홍(53·사법연수원 27기)·이행규(53·28기) 공동대표변호사는 각각 공정거래와 금융 분야 전문가다. 이들은 사법연수원 수료 후 법무관으로 복무한 뒤 곧바로 지평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2000년대 초부터 지평에서 20여년간 근무하면서 각 분야의 전문가로 자리 잡아 지평과 함께 성장했다.
태평양과 광장, 세종도 '원펌맨'들이 회사의 대표 얼굴이다. 2024년부터 태평양을 이끄는 이준기(59·22기) 업무집행대표변호사도 순혈 태평양맨이다. 이 대표는 1996년 태평양에 입사해 오랜 기간 인수합병(M&A)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2024년 2월, 광장의 경영총괄대표로 재선임된 김상곤(57·23기) 대표변호사도 1994년 광장에 입사해 변호사로 첫발을 내디뎠다. 김 대표도 M&A 및 기업 지배구조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 왔고, 이 분야 최고 전문가 중에 하나로 불린다. 2021년 취임 이후 2024년 1월 연임에 성공한 오종한(60·18기) 세종 경영대표변호사도 세종 한 곳에서만 30년 이상 변호사 생활을 했다. 오 대표는 국내외 증권·금융 및 상사 거래 분야의 송무 관련 명성이 높다. 김·장의 정계성(74·6기) 대표변호사도 1976년 변호사로 개업하자마자 김·장에 입사해 대표에까지 오른 사례다. 정 대표는 김·장에서 금융 분야를 맡고 있다.
로펌 업계에서는 공채 출신에게 경영까지 맡기는 것은 "세대교체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한 로펌에서 오래 근무하면서 로펌의 성장을 지켜보고, 일조하며 그 과정에서 홍보 업무도 담당하는 등 자기가 몸담고 성장한 로펌을 속사정을 가장 잘 알고, 이해도가 높기 때문에 경영까지 맡게 된다는 것이다. 한 대형 로펌의 변호사는 "외부에서 근무하다가 로펌에 합류한 분들 중에서도 훌륭한 분들이 많지만, 길게는 로펌이 창립했을 때 입사해 지금의 성장 과정을 다 지켜보고 그 과정에서 일정 기여한 변호사들이 대표변호사가 된 경우가 사실 자연스럽다"며 "후배들에게도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다른 대형 로펌의 변호사도 "창립 세대 이후 공채로 대형 로펌에 입사했을 당시, 한국 경제가 성장하고 국제 경제의 다변화 및 IMF 등 환경의 영향으로 M&A를 비롯한 자문 영역이 활발했고 그 영역에서 활약한 변호사들이 성장하게 돼 대표변호사로 자리 잡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직했다 돌아와 대표 된 경우 없어
나머지 5개 대형 로펌 경영대표들도 중간에 경쟁 로펌으로 이직했다가 돌아온 사례는 없었다. 이들은 대부분 법원이나 검찰에서 넘어와 소속 로펌에 계속 몸담으며 경영까지 맡는 대표에 올랐다.
최근 김·장의 대표가 된 목영준(70·10기) 대표변호사의 경우 헌법재판관과 법원행정처 차장, 헤이그국제상설중재재판소 재판관 등을 역임한 뒤 2013년 변호사로서 김·장에 합류해 사회공헌 활동에 매진했다.
2025년 2월부터 1인 단독 대표 체제로 전환한 율촌의 대표변호사를 맡고 있는 강석훈(62·19기) 대표변호사는 판사 출신의 조세 전문가로 법원을 떠난 뒤 변호사로서는 율촌이 첫 직장이다. 법무법인 바른 이동훈(57·23기) 대표변호사와 법무법인 대륙아주 이규철(61·22기), 법무법인 동인 황윤구(64·19기) 대표변호사 역시 법원 출신으로 현재 몸담고 있는 소속 로펌에서 변호사로 새 출발 한 뒤 대표까지 됐다.
화우의 이명수(58·29기) 대표변호사는 비전관 출신으로 금융감독원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뒤 화우에 합류해 대표까지 된 사례다.
창립 세대는 재조 경험 많아
창립 세대는 후세대 경영대표들과 비교하면 법원·검찰 경력자들이 두드러졌다. 광장의 모태인 이태희 합동법률사무소를 차린 이태희(85·고시 14회) 변호사는 판사로 법조 경력을 시작했고, 세종의 설립자인 신영무(81·사시 9회) 변호사 역시 육군법무관으로 복무한 뒤 2년간 판사로 근무했다. 화우의 한 축이었던 우방의 대표를 지낸 윤호일(82·사시 4회) 명예대표변호사도 법원 출신이다. '송무 전문'으로 몸집을 불려 간 바른은 이런 경향이 더 명확했다. 바른 창립 당시 대표변호사인 강훈(71·14기) 대표변호사를 비롯해 조중한(77·1기), 김동건(79·1기), 정인진(72·7기), 김재호(63·16기), 이원일(67·14기), 박철(66·14기) 대표변호사가 모두 법원 출신이다. 명노승(79·3기), 문성우(69·11기) 대표변호사는 검사 출신이다. 동인의 창립자이자 첫 대표변호사인 이철(76·5기) 명예대표와 2대 경영대표를 지낸 노상균(71·13기) 변호사는 검사 출신이다.
대형 로펌에서 다년간 근무한 한 변호사는 "창립 대표를 비롯해 창립 멤버가 판사나 검사 근무 이력을 가진 변호사들이 많을수록 다음 대표를 선출할 때 전관 여부를 중요하게 생각한 시절도 있었다"며 "앞으로는 전관 여부보다 해당 로펌에 대한 이해 및 기여, 구성원들의 신망이 대표를 결정하는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수현 법률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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