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전기차 충전 인프라, 이대로 괜찮은가-③충전 유토피아의 길

과태료 대신 '주차 요금 부과'
스마트 유지·보수 시스템 도입
이동수단 넘어 국가기간망 인식
'통합 결제 시스템' 구축도 과제
사용자 중심 정책·제도 방안 필요

현대자동차그룹에서 운영중인 제주 애월읍 하귀 위치한 E-pit 전기차 충전소. 박창원 기자.

국내 전기차 충전 인프라에서 가장 시급하게 개선돼야 할 점은 '1시간 규제'의 합리적인 재편이다. 10만원 과태료라는 강력한 제재 대신 운전자 부담을 줄이면서도 충전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징벌적 과태료보다는 초과한 시간만큼의 요금을 받는 '주차요금 부과' 방식을 전면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이미 대부분의 전기차 운전자들은 충전 카드나 앱에 결제 카드를 등록해 사용하고 있다.

이 시스템을 활용해 충전이 완료된 후에도 충전구역에 차량이 주차돼 있을 경우 10분 또는 30분 단위로 소정의 주차요금을 부과하는 방안이다.

예를 들어 충전 완료 후 일정 초과시간까지는 무료로 회차 시간을 주고, 그 이후부터 정해진 시간에 따라 주차요금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이는 불필요한 장시간 주차를 억제하고 충전소 회전율을 높이면서도, 과도한 과태료 부담을 줄여 운전자들이 합리적이라고 느낄 수 있는 대책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공공 충전 인프라의 질적인 개선이 필수적이다. 현재 50kW급 충전기가 대부분인 상황에서 최소 100kW급 이상 초고속 충전기 확충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는 충전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해 운전자들의 불편을 줄이고, 1시간 규제와 같은 문제도 자연스럽게 완화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

이와 함께 스마트 유지보수 시스템 도입이 절실하다. AI 기반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해 고장 징후를 사전에 감지하고, 고장 발생 시 신속하게 출동해 수리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다양한 충전기 모델 혼재와 특정 해외부품 수급 지연 문제는 공공 충전 인프라의 치명적 약점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충전기 모델 표준화, 핵심부품 국산화율 증대와 함께 장비별 필수 예비부품을 지역 거점별로 확보하는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나사 하나, 볼트 하나' 없어서 충전 인프라가 멈춰서는 일은 없어야 한다.

충전소 앱에 각 충전기의 실시간 상태는 물론 예상 대기시간, 충전 가능 여부, 예상 수리 일정 등을 정확하게 제공하는 투명한 정보제공 대책도 중요하다.

나아가 미래를 위한 통합적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공공기관은 모든 충전 인프라를 직접 운영하기보다는 민간사업자들과의 협력을 강화해 효율적인 충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공공은 민간이 진출하기 어려운 지역이나 특정 공공시설에 집중적으로 인프라를 구축하고, 민간은 경쟁을 통해 서비스 질을 높이는 역할 분담 대책을 모색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 계열의 E-pit 충전 회사 관계자는 "수익도 고려하지만, 고객이 전기차 충전 편의성을 느껴 전기차 구매 장벽이 줄어드는 데 더 큰 목적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를 위해 더 빠른 속도의 충전과 공공기관 충전기보다 조금이라도 저렴한 충전 인프라를 제공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고객 편의성과 시장 활성화를 최우선에 두고 있다'는 E-pit 충전사 관계자의 언급은 공공 부문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공기관 시설의 적자운영 현실을 고려할 때 민간의 자본과 기술력을 적극 활용해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전기차는 단순한 승용차를 넘어 화물운송의 핵심 수단으로 자리 잡을 미래형 자동차로서의 역할에 대비해야 한다. 단순한 개인의 이동 수단을 넘어 국가 기간망의 일부로 인식돼야 한다는 것이다. 경유나 휘발유를 비상시에 대비해 일정량 비축하는 것처럼 전기차 충전 인프라도 국가 비상상황 시 안정적인 운영을 보장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이 절실하다.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운영 중인 신재생에너지 융복합 EV(Electric Vehicle)충전스테이션. 제주도 제공.

제주도와 같은 섬 지역은 악천후 시 물류 이동에 제약이 크다는 점에서 재난 상황에서도 충전이 가능한 예비부품 확보 및 이동형 충전시스템 등 지역 특성을 고려한 비상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운전자 편의성 증진을 위한 통합결제 시스템 구축도 중요한 과제다. 여러 사업자의 충전 카드를 일일이 소지하지 않고, 하나의 결제 수단으로 모든 충전소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와 유관기관은 전기차 운전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실제 불편 사항을 정책에 적극 반영하는 사용자 중심의 정책 수립과 제도적 방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

전기차 시대로의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그 흐름에 성공적 안착을 위해선 정부와 공공기관, 민간 사업자가 모두 운전자의 불편을 해소하고 합리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탁상행정에서 벗어나 데이터와 현장 목소리를 기반으로 '충전 유토피아의 길'을 향해 나아갈 때다.

호남팀 호남취재본부 박창원 기자 captai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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