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 '이재명·트럼프, '실용'서 접점…남북, '우호적' 두 국가로'

[인터뷰]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 외교안보 '핵심 책사' 문정인 교수 "남북보다 북·미대화 먼저"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전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74)는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향후 대북정책에 있어 '실용적 접근'을 시도할 것으로 전망했다. '비핵화'를 곧장 의제로 올릴 것이 아니라 핵 동결부터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현재의 꼬인 북핵문제를 풀 유일한 방법이라는 제언이다. 2019년 이른바 '하노이 노딜' 이후 잔뜩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서는 이 대통령의 파격적 구상이 필요하다고 봤다.

'2025 제주포럼' 참석차 제주를 찾은 문 교수는 지난달 30일 아시아경제와 단독 인터뷰를 갖고 "헌법 3조(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에 대한 우리의 입장 표명이 있거나, 북한이 주장하는 적대적 두 국가론을 우리가 인정한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표해야 북한이 (협상에)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이 그렇게 하겠다면 막을 길은 없다"면서, 오히려 이를 계기로 현재 한미연합사령관에 있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협상을 시도하는 전략을 제안했다.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전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가 지난달 30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제주포럼 사무국

다음은 문 교수와의 일문일답.

-이 대통령은 대선 때 '북핵 동결→감축→핵 위협 해소'의 포괄적·단계적 비핵화 로드맵을 제시했다. 어떻게 평가하나.

▲다른 수가 없지 않나. 북한은 핵시설, 핵물질, 핵미사일 다 갖고 있고 이미 6차례 핵실험을 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도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라고 말했다. 상당히 실용적인 현실 인식이다. 물론 핵확산금지조약(NPT) 멤버로서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할 순 없다. 다만 '인정'과 '인지'는 다르다. 북한의 현실을 인지한 상태에서 현실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 (핵 폐기부터 요구하는) 비핵화가 어젠다가 되면 북한과 대화를 못 하게 된다. 결국 핵 군축을 거쳐야 비핵화로 갈 수 있다.

-비핵화 목표는 유지되나.

▲물론이다. 한미 모두 NPT 회원국이다. 당연히 규범적으로는 비핵화를 원하지만 감축 없이 어떻게 폐기하겠나. 핵 시설 해체는 10~15년 이상 오랜 시간이 걸리는 중장기 과제다. 점진적 접근이 바람직하고, 이 대통령의 접근 방법은 실용적이고 현실에 기초한 실사구시 해법이다. 그 대목에 있어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이 대통령이 접점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과거 문재인 전 대통령은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기 위해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한미연합훈련 임시 중단을 선언했다. 이재명 정부에서 활용할 만한 카드는 무엇일까.

▲이제는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본다. 북한은 기본적으로 남북한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했다. 북한이 요구하는 것은 남북이 서로 다른 두 개의 국가로서 영토와 주권을 존중하고 내정간섭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결국 헌법 3조에 대한 우리의 입장 표명이 있거나, 북한이 주장하는 적대적 두 국가론을 우리가 인정한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표해야 북한이 (협상에) 나올 것이다. 이 경우 북한 통일전선부(현 노동당 중앙위 10국)가 아니라 외무성이 나올 것이고, 우리도 통일부가 아니라 외교부가 나서서 얘기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건 분단으로 가는 것이라 국내 정서상 쉽지 않고 상당히 어려운 과제다.

-북한과의 대화 재개 시점은.

▲북·미 간 대화가 먼저 진행될 거다. 지금 상황에서 남북 간의 돌파구를 찾기는 현실적으로 상당히 어렵다. 북한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당했던 굴욕감·배신감도 크게 작용하겠지만, 우선 우크라이나 사태와 미국·이란 핵 협상을 세밀하게 지켜보고 있을 거다. 이 두 상황이 전개되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과 대화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만약 우크라 사태가 해결돼서 트럼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더 가까워지면 푸틴 대통령이 나서서 북·미 사이 중재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코리아 패싱' 우려가 나오는데.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라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든 푸틴 대통령이든 무슨 상관인가. 우리 대통령도 반대할 이유 없다. '더러운 평화가 이기는 전쟁보다 낫다(2023년 7월5일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발언)'는 대명제하에서 누구든 전쟁을 막고 한반도 평화 가능성을 올려준다면 우리는 환영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미국, 러시아와 대화하며 (북한과의 대화를) 촉진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가장 많이 만난 사람이고, 본인이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한다. 편지도 28차례나 교환했다. 다만 동맹이고 주한미군 문제도 있으니 미국은 한국과 협의할 것이다. (한미 간) 협의 체제만 구축되면 우리는 패싱당하는 게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을 통해 북한에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2018년의 역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남북 간 신뢰를 회복할 방법은.

▲지금은 상당히 어렵다. 우리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레짐(regime)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다만 김 위원장이 내놓은 '적대적 두 국가'론에서 '적대적'을 어떻게 '우호 친선적'으로 바꾸느냐가 중요하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을 완전히 다른 국가로 인정하고 두 국가로 가자고 하면 (북한이) 오케이 할 것이다.

-통일의 꿈은 사라지는 것인가.

▲원래 남쪽의 통일 제안이 기본적으로 두 국가론에 기초한 것이었다. 하나의 민족이 두 개의 국가, 두 개의 정부를 유지하는 남북연합론이다. 주권을 가진 국가들이 모여 경제체제를 이룬 유럽연합(EU)과 유사하다. 사람과 물자가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남북한의 동질성이 올라가고, 결국 북한도 시장체제로 갈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후세에 국민투표를 통해 통일의 형태를 결정하면 된다.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는 어떻게 보나.

▲전략적 유연성에 따른 재배치와 감축, 철수는 각각 구별해야 한다. 미국이 전략적 유연성에 따라 주한미군을 옮기겠다고 하면 우리가 막을 길이 없다. 다만 감축이나 철수는 한미 간 협의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향후 미군을 해외에 주둔시키는 문제는 미국 내에서도 많은 논쟁이 있을 것이다. 자연히 전작권 전환 문제가 나올 것이다. 만약 이 논쟁이 나오면 피하려 하지 말고 선제적으로 트럼프 행정부와 협상해야 훨씬 유리할 것이다.

-자칫 양안(중국·대만) 문제 개입으로 해석될 우려는.

▲주한미군 재배치는 미국의 결정이란 것을 중국도 알 것이고, 큰 문제가 아니다. 다만 만일 미국이 중국을 겨냥한 중거리 탄도미사일이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추가 배치를 원할 경우 우리 입장이 상당히 어려워진다. 기본적으로 그에 반대한다. 대한민국이 신냉전 구도의 최전선이 돼선 안 된다.

-새 정부 외교안보 정책에 대해 조언한다면.

▲전쟁을 피하는 예방 외교가 이 대통령 외교안보 정책의 기본이 돼야 한다는 점에 백분 동의한다. 한국은 (북한과의 대화를 위한) 레버리지가 없으니 결국 미국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의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이 대통령이 국익에 기초한 '실용 외교'를 한다면 한·미·일 3국 공조, 중국·러시아와의 선린 외교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 과거에는 '미국 없는 한반도'는 불가능한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오늘의 미국은 우리가 알던 과거의 동맹국 미국이 아니다.

아울러 결국 외교는 내치의 연장이다. 국민적 합의가 구축돼야 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함께 지도자의 결기가 필요하다.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전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가 지난달 30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제주포럼 사무국

문정인 교수는 누구? 김대중 ·노무현·문재인 정부 외교안보 '핵심 책사'

문 교수는 과거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를 두루 거치며 외교안보 정책에 핵심 역할을 한 원로 전문가다. '햇볕정책' 이론 구축에 깊이 관여한 저명한 국제정치학자로, 학자로서는 유일하게 2000년·2007년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에 모두 참석해 직접 현장을 지켜봤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을 역임했다. 아울러 국가안보실장·주미대사에 거론되기도 했다.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선거캠프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진 않았으나 외교안보 자문그룹인 더불어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후보 직속 글로벌책임강국위원회 고문을 맡았다.

아래는 문 교수 프로필.

▲1951년 제주 출생 ▲오현고 ▲연세대 철학과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1, 2차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 ▲대통령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 ▲한국평화학회 회장 ▲동아시아재단 이사 ▲외교통상부 국제안보대사 ▲문재인 정부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보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 ▲국방대학교 석좌교수 ▲세종연구소 이사장 ▲연세대 명예특임교수(현)

정치부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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