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취재본부 조충현기자
병든 유전자를 잘라내는 유전자 가위 기술은 의료 혁신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이 정밀한 가위도 '잘못 자르면' 문제다. 모든 사람의 DNA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효과적인 치료법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내 유전자에 딱 맞는 가위 안내서'가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부산대학교 의생명융합공학부 박정빈 교수 연구팀은 19일 강원대학교 김혜란 교수팀과 공동으로 개인 맞춤형 유전자 가위 오작동 예측 도구 'Variant-aware Cas-OFFinder'를 개발했다.
연구진, 박정빈 교수, 아비요트 멜카무 메코넨 박사과정생, 성강 연구원. 부산대 제공
개인 유전체 정보를 반영해 유전자 가위의 정확한 작용 지점과 위험 지점을 예측할 수 있는 웹 기반 도구다.
표준 DNA 아닌 '내 DNA' 기준으로 부작용 예측이 도구의 핵심은 '개인 유전체 변이'를 반영한다는 점이다. 기존 기술은 표준 유전체에 기반해 유전자 가위의 작용을 예측했다. 문제는 사람마다 유전 정보가 미세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이 차이 때문에 유전자 가위가 엉뚱한 부분을 자르는 오프타겟(off-target) 부작용이 발생한다.
연구진은 각 개인의 유전적 차이를 담은 VCF(Variant Call Format) 파일을 분석에 활용했다. 마치 내비게이션이 실시간 교통 정보를 반영하듯, 이 도구는 내 DNA만의 '지도'를 그려 유전자 가위가 어디를 조심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박정빈 교수는 "이번 도구는 유전자 가위를 위한 맞춤형 내비게이션"이라며 "안전한 유전자 치료를 가능하게 하는 정밀 의료 시대를 앞당길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실제 성능 검증도 인상적이다. 연구팀은 인간뿐만 아니라 고추 품종에도 도구를 적용해 테스트했다. 그 결과 개인이나 품종에 따라 서로 다른 오프타겟 위험 지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기존 도구로는 잡아내지 못했던 고유한 잘림 지점을 식별한 셈이다.
지원 유전자 가위도 40종, 분석 대상 생물종은 무려 557개에 달한다. 단순한 의료기술을 넘어 작물 개량이나 유전자 연구 전반에 걸쳐 폭넓게 활용 가능하다는 의미다.
도구는 무료 웹 서비스로 제공되며 로그인 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정밀 유전자 시대를 여는 '실용 기술' 이번 연구는 실용성에서도 눈에 띈다. 도구 개발을 주도한 공동 제1저자 아비요트 멜카무 메코넨 박사과정생과 성강 연구원(KAIST 석사과정)은 "이 기술이 실제로 개개인의 유전자를 교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연구자로서 더할 나위 없는 보람"이라고 말했다.
이번 성과는 농촌진흥청, 한국연구재단, 교육부의 지원을 받았으며 생명과학 분야 국제 최고 권위지 중 하나인 'Nucleic Acids Research'(핵산 연구) 5월 8일 자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