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기자
3월 정기주총 시즌이 막을 내린 가운데 출사표를 던졌던 164건의 주주제안이 아쉬운 성적표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지난달 마무리된 2025년 정기주주총회에선 40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총 164건의 주주제안이 상정됐다. 임원 선임 및 이사회 구성 관련 안건이 91건(55.5%)으로 가장 많았으며, 주주환원 및 자본배치정책 관련 안건이 30건으로 뒤를 이었다.
그러나 주총 문턱을 넘은 안건은 손에 꼽았다. 164건의 주주제안 중 가결된 안건은 18건(11%)에 불과했고, 전체 55%에 달하는 90건의 안건이 부결 처리됐다. 자동 폐기도 56건(34.1%)에 달했다. 이경연 대신증권 연구원은 "다른 안건 부결로 인한 자동 폐기나 정족수미달 등 요건 미충족으로 무산된 사례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후 맞이하는 첫 정기주총 시즌이었던 만큼 자사주 소각(8건) 역시 큰 기대를 모았으나 전부 부결됐다.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 파트너스가 코웨이 이사회의 독립성 제고를 요구하며 제안했던 집중투표제 역시 성사되지 못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주주행동주의 바람이 불어 주주가치 제고와 지배구조 개선의 열망이 커지는 가운데 주주제안이 증가하는 추세는 증시 활성화를 위한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본다"면서도 "다만 제안 중 10%가량만 통과되고 자사주 소각 관련 제안 8건이 모두 부결된 것은 아쉽다"고 평가했다.
주주제안이 이번 정기주총에서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진 못했으나 주주환원 측면에 있어서 분명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연구원은 "기업들이 주주들의 직접적인 자사주 소각 요구에 여전히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면서도 "주주제안의 낮은 가결 비율과 별개로 실제 기업들의 자사주 소각 행보는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주식소각 결정 공시 수는 지난해 말부터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다. 2019년 32곳에 불과했던 주식 소각 결정 공시 기업 수(코스피·코스닥 합산)는 2024년 172개사로 5배 이상 늘었다. 2023년 4조원 수준이었던 소각 예정 금액 역시 지난해 11조2000억원으로 3배가량 증가했다. 코스피 내에서도 지난해 중형사(27개)와 소형사(29개)의 주식소각 결정 공시 건수가 대형사(42개)와의 격차를 상당히 좁힌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원은 "올해 주총에서 주주제안을 통해 자사주 소각이 직접 가결되지는 않았지만, 많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주주환원에 나서고 있는 것은 의미가 크다"며 "특히, 주주환원 정책이 대형사 중심에서 중소형사로 확산하는 최근의 흐름은 향후 중·소형주 투자전략에도 유의미한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다만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주주환원에만 너무 몰두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진정한 밸류업은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 확대만으로는 불가능하고 법 제도개선과 지배구조의 투명성, 지속가능한 수익성이 담보돼야 완성된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2004년 말에 0.84배 수준이었던 코스피 PBR(주가순자산비율)은 2024년 말에도 0.84배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가 절실한 상황"이라며 "주주들의 힘만으로는 저평가를 해소할 수 없다. 금융당국과 기업이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노력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