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두 개의 목소리, 하나의 광주 '금남로'

송보현 / 호남취재본부 기자

송보현 호남취재본부 기자

광주가 다시 한번 역사의 중심에 섰다. 지난 15일, 광주 금남로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양극단 대립의 장이 됐다. '윤석열 즉각 파면'을 외치는 시민들의 함성과 '정상 국가로 가야 한다'는 보수 성향 기독교 단체의 목소리가 불과 100m 간격으로 서로를 밀어내고 있었다.

탄핵 찬성을 촉구하는 무대 위에는 역사 강사 황현필 씨가 올랐다. 그는 "5·18 당시 금남로에서 열사들이 민주주의를 지켰다"며 "그 피가 뿌려진 금남로에서 비상계엄을 옹호하고 내란 수괴를 지지하는 자들이 집회한다는 것은 홀로코스트가 행해진 곳에서 나치 추종자들이 모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대편 무대에서는 전한길 강사가 붉은 셔츠를 입고 등장했다. 그는 "갈등과 분열이 아니라 통합과 화합으로 뭉쳐야 한다"고 외쳤지만, 무대 아래 터져 나오는 "윤 대통령 석방"이라는 구호는 그 '통합'의 의미를 혼란스럽게 했다.

경찰은 양측 충돌을 막기 위해 차 벽을 세웠다. 그 벽은 물리적 안전을 보장했지만, 동시에 대한민국 사회가 겪는 단절을 상징하는 듯했다. 서로의 존재를 부정한 채 떨어진 간격으로 대치하는 군중. 그날 큰 소란이나 불상사는 없었지만, 현장을 목도하고 있는 기자의 눈은 차 벽 뒤에 가려진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이날 만난 60대 시민은 "5·18 정신은 절대 훼손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여기 서 있는 이유는 단순한 정치적 대립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언급했다. 옆에 있던 40대 직장인은 "아버지가 80년 금남로에 계셨다. 역사를 배웠고, 지금 이 자리에 서야 하는 이유를 안다. 과거를 잊으면 같은 비극이 반복된다"고 강조했다. 작은 태극기를 움켜쥔 70대 시민은 "광주는 싸워서 지켜낸 땅이다. 그 땅에서 다시 독재의 망령을 보게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분주하게 양쪽 현장을 오가면서 과거 한강 작가가 던진 질문이 떠올랐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그날 만난 광주시민들은 모두 표정과 큰 목소리로 "응"이라고 대답했다. 동시에 과거의 아픈 기억 위에 또 다른 정치적 해석을 덧씌우려는 이들에게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맞섰다.

호남팀 호남취재본부 송보현 기자 w3to@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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