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제일기자
약 2000년 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화려했던 한 고대 도시가 최후를 맞았다. 바로 고대 로마에서 가장 화려한 문명을 자랑했던 이탈리아 나폴리 인근의 도시 폼페이다. 최근 미국 하버드 의대와 독일 막스 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등 국제 공동연구팀은 폼페이의 희생자 가운데 14구의 시신에서 추출한 고대 DNA를 분석한 연구 결과를 생물학 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 최신 호에 발표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파편화된 뼈에서 DNA를 추출해 성별과 유전적 관계 등을 밝혀냈다는 점에서 학술적 의미가 크다. 이 가운데, 기존의 통념을 뒤집는 결과도 나왔다. 먼저, 폼페이의 희생자 중 가장 유명한 화석은 이른바 '금팔찌의 집'(The House of the Gold Bracelet)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에서 사망한 시신 간의 관계다. 과거 발굴 작업 중 모습을 드러낸 이곳은 총 4구의 시신이 폼페이 참상의 마지막 모습을 생생하게 그대로 전하고 있다.
이 모형은 어른 2명과 아이 2명이 앉거나 누워있는 모습이다. 지금껏 많은 복원가는 이 네 사람이 가족일 것으로 추측했다. 아이를 안고 있는 한 어른이 팔찌를 착용했다는 점을 토대로 그가 두 아이의 어머니이고 나머지 한 명을 아버지라고 추정한 것이다. 하지만 석고 모형에 들어가 있는 뼛조각에서 추출한 DNA 분석 결과, 팔찌를 한 어른을 포함한 네 사람 모두 남성이며 서로 혈연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두 사람이 포옹하고 있는 모습의 또 다른 석고 모형도 분석했다.
그동안 연구자들이 어머니와 딸이거나 자매일 것으로 추정한 모형이었다. 하지만 연구진은 이들 중 한 명은 남성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그간 폼페이 화석에 대한 일부 해석이 고정관념에 기반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논문 공동 저자인 막스 플랑크 연구소 알리사 미트닉 연구원은 "이 사람들이 누구였고 어떤 관계였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면서 "오랫동안 사람들 사이에 회자한 정설과 같은 이야기가 명백히 달랐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이어 "누워있는 성인이 금팔찌를 차고 있어 이를 여성으로, 또 엄마라는 인식을 준 것"이라면서 "이처럼 폼페이의 과거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유전자 검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그는 "폼페이 시민들이 주로 지중해 동부에서 온 이민자들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이번에 확인됐다"면서 "이는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이동했는지와 로마 제국의 다문화적 역동성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한편, 폼페이는 서기 79년, 폼페이 인근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면서 사라진 도시로 주민 약 2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화산 폭발 직후 규모 5~6으로 추정되는 지진이 발생해 순식간에 도시는 폐허가 됐다. 특히 화산 폭발 직후 고체화된 용암 조각과 화산재 및 뜨거운 가스가 순식간에 도시를 뒤덮어 주민들의 많은 수가 가스와 재에 질식해 사망했다. 이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폼페이는 지난 1592년 폼페이 위를 가로지르는 운하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건물 및 미술 작품들의 흔적이 발견돼 지금까지도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