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보정담]이정한 여경협 회장 '여성기업 해외로 눈 돌려야'

건강 비결은 '걷기'…배낭 메고 호수공원 다녀
여성주간 주제 '글로벌 역량강화 및 수출확대'
"국내서도 여성 스티브 잡스 태어나길"

이정한 한국여성경제인협회 회장을 잘 설명하는 말 중 하나는 ‘도전’이다. 작은 철재상에서 시작해 여성 기업인이 드문 금속 자재 가공·유통 분야에서 비와이인더스트리를 매출 100억원대 전문기업으로 키운 과정은 말 그대로 도전의 연속이었다. 2022년 여성경제인협회 회장을 맡아 국내 314만 여성기업의 대변자로 활동하게 된 것도, 여성경제인 성장을 위해 한국여성경제인협회가 주관하는 ‘여성기업주간’을 만든 것도 그는 도전이었다고 말한다. "항상 겁 없이 일을 저지르는 스타일"이라고 스스로 얘기한다.

올해 7월 초 열리는 제3회 여성기업주간을 준비하며 그는 우리나라 여성기업과 함께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단지 행사를 잘 치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이를 발판으로 우리 여성기업이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는 길을 열겠다는 큰 구상을 가지고 있다. "올해는 해외 유통망을 갖춘 대기업, 유관기관과 협력해 여성기업의 글로벌 시장 개척에 앞장서겠다"고 그는 강조해왔다. 올해 여성기업주간의 슬로건 ‘세계를 무대로, 새로운 기회를 여는 K-여성기업’은 이를 함축한다.

여성기업주간 행사 준비가 한창인 지난 11일 오후 이 회장은 밝은색 정장에 운동화를 신고 초여름의 햇살이 내리쬐는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매헌시민의숲을 걸었다. 그는 평소에도 틈만 나면 걷기로 건강을 챙긴다. 이 회장은 "아침에 일어나서 걷고, 저녁에도 되도록 걷는 편"이라며 "집 앞 호수공원을 하루에 30분에서 1시간 30분 정도 배낭을 메고 돌아다니는 게 건강 비결"이라고 말했다.

이정한 한국여성경제인협회 회장이 서울 양재동 매헌시민의 숲 길을 걷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다음은 이 회장과의 일문일답.

-올해 신년사에서 여성기업의 글로벌 시장 개척에 앞장서겠다고 했다.

▲여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2023 여성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여성기업의 매출액 대비 수출액 비중은 2.6%이며, 수출 경험이 있는 여성기업은 1.9%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여성기업이 수출 경험과 규모가 미비하며, 내수에 집중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여성기업의 생존과 더 큰 도약을 위해 필연적으로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할 때다.

-한국여성경제인협회(여경협)에서는 기업들의 글로벌 진출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을 추진하고 있나?

▲여경협 관계기관인 여성기업종합지원센터는 올해 신규사업으로 중소벤처기업부의 지원을 받아 ‘글로벌 액셀러레이팅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은 해외 진출을 희망하는 창업 7년 이내인 기업을 대상으로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한 실무교육, 컨설팅, 글로벌 홍보, 해외시장 개척 등을 지원한다. 유망한 여성 스타트업의 실질적 해외 진출을 도와 새로운 유니콘 기업으로 육성하는 것이 목표다.

국내 온라인 플랫폼이 해외시장으로 진출할 때 여성기업이 입점해서 해외 판로를 개척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도 진행하려고 한다. 협회는 항상 문을 열어놓고 있고, 닫힌 문은 두드리는 중이다.

-7월 첫째 주가 여성기업주간이다. 올해 주제는 무엇이고 어떤 활동을 할 예정인가?

▲올해 개최될 3회는 ‘글로벌 역량 강화 및 수출 확대’를 테마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 주간 행사를 통해 많은 여성기업에 해외 진출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동기를 부여하고, 수출 확대와 해외 판로 개척을 위한 희망과 도약의 장으로 만들고자 한다. 이를 위해 서울을 비롯한 전국 19개 지역을 중심으로 수출 및 글로벌 진출 관련 각종 교육, 정책토론회, 상담회, 네트워크 프로그램 등을 준비했다.

주한 대사들과 주한 상공회의소장들 가운데 여성인 인물들도 초청했다. 여성기업이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데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고, 그 시작점을 만들어보고 싶다.

-한국여성경제인협회장을 맡은 지 2년 6개월 정도가 지났다. 가장 기업에 남는 사업은 무엇인가?

▲지난해 처음 시행한 미래여성경제인 육성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돼 올해 사업 규모가 두 배로 확대됐다. 미래여성경제인 육성사업은 선배 여성 최고경영자(CEO)의 경험·노하우를 미래 세대인 여학생에 전수해 미래여성경제인으로 육성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선배 여성 CEO들이 그동안 겪었던 수많은 어려움과 시행착오를 후배들이 반복해서 겪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는 공감대로 시작됐다. 지난 1년 동안 전국을 돌며 여성 CEO 특강, 국내 여성기업 탐방, 실전 창업 멘토링을 진행했고, 10월에는 미국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글로벌 비즈니스 탐방, 11월에는 그동안 사업에 참여했던 모든 학생과 여성 CEO들이 한자리에 모여 통합 워크숍을 개최했다.

지난번 한 여대 학생들을 만났는데 모두 취업을 목표로 했으나 여성 대표들의 강연을 듣고 ‘여성 CEO가 되고 싶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는 모습을 봤다. 대한민국 여성들이 섬세하면서도 원대한 꿈을 가지면 세계적인 여성으로 태어날 수 있을 것 같다. 국내에서도 여성 스티브 잡스가 나오면 좋지 않을까 싶다.

-여성기업의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이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 우리 세대만 해도 본인의 실력과 비전보다는 이혼, 사별, 남편의 실직으로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업에 뛰어든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때문인지 과거 많은 여성기업이 쉽게 창업이 가능하고,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낮은 도·소매업, 요식업, 부동산업 등에 치중돼 있었다.

여성기업이 이러한 문제를 극복할 방법의 하나는 바로 새로운 기술 접목을 통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중심축을 전환해, 기업의 가치와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고무적인 것은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서 우수한 여성 인재들이 많이 배출되고 있고, 자신의 기술과 능력을 발휘해서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창업에 도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정보통신기술(ICT), 인공지능(AI) 등 기술기반 창업이 무척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간 기술창업 증가율을 보면 여성(4.1%)이 남성(1.0%)보다 4배 이상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 분야는 4차 산업 시대 핵심 분야로 세상을 바꿀 여성기업이 가까운 미래에 점진적으로 두각을 나타낼 것이라 기대한다.

그리고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임신·육아·출산이다. 20·30대 젊은 여성 CEO들을 만나서 애로사항을 물어보면 어김없이 임신·출산·육아의 어려움이 거론된다. 30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아 무척 안타깝다. 요즘 여성 근로자의 임신, 출산, 육아를 위한 지원책은 잘 마련돼 있지만, 여전히 여성 CEO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여성기업 대부분이 기업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으로 대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 상황에서 기업과 가정을 모두 책임져야 하는 여성 CEO들은 쉽사리 자리를 비우지 못해 임신을 미루거나, 출산 후 몸이 다 회복되지 못한 상태로 무리해서 복귀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성 CEO의 일·가정 양립을 위한 환경 조성되도록 국가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꼭 필요하다.

이정한 한국여성경제인협회 회장이 서울 양재동 매헌시민의 숲을 걷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현시점에서 여성기업에 가장 필요한 정책으로 무엇을 꼽는가?

▲여경협이 2019년 설립한 여성경제연구소는 여성기업 관련 기초 통계자료 구축과 조사연구를 하며 여성기업 육성과 발전을 위한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국내 유일의 여성기업 연구기관이다. 다른 여성 관련 연구기관은 여성 노동 및 인권 등에 초점을 맞춘 연구가 대부분이어서 여성기업 관련 연구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며, 사실상 우리 여성경제연구소가 유일하게 여성기업 관련 통계 및 자료를 생산하고 있다. 그런데도 현재 여성경제연구소는 팀 단위 정도의 업무만 수행 가능할 정도 규모로 여성기업 관련 연구·조사 활동에 있어서 많은 한계와 어려움을 갖고 있다. 여성기업이 전체 기업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우리 경제와 사회 속에서의 역할과 중요성도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여성기업 육성을 위한 체계적이고 시의성 있는 정책 마련을 위해 다양한 조사·연구가 가능하도록 국가 차원에서 여성경제연구소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과 예산 확대가 필요하다.

연구·개발(R&D) 예산에도 여성기업 전용이 있으면 좋겠다. 여성기업들은 기술력 부분에서 점수가 조금 깎이는 면이 있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가점을 부여해주면 더 좋을 것 같다.

-일각에서는 여성기업을 지원하는 것이 역차별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여성기업 지원은 단순히 여성기업에 대한 특혜나 역차별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필수 선택으로 봐야 한다. 현재 우리 사회가 최우선 과제로 안고 있는 저성장, 저출생, 일자리 창출 등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가 바로 여성기업 육성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성의 경제활동 1% 증가 시 출산율이 0.3~0.4% 증가한다고 한다. 여성경제연구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성기업의 여성 근로자 고용률(72%)이 남성기업(31%)의 2.3배 이상이라고 한다. 결국 여성기업이 더 많아지고, 더 크게 성장할수록 여성을 위한 좋은 일자리가 더 많이 늘어나 여성의 경제활동이 활성화되고, 이것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저성장, 저출생 등의 문제 해결로 이어져 우리 경제와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올해 중소기업 현안 가운데 주 52시간 근무제 유연화가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은 주 52시간 근무가 가능하다. 그런데 50인 미만 중소기업에 매출 100억~200억원은 전부 오더메이드다. 납기를 지켜야 하는데 ‘직원들이 주 52시간 일해야 해서 시간을 맞출 수 없다’고 하면 그 기업에 주문을 안 준다. 외국인 근로자는 주말에 일 안 시키면 급여가 적다고 다른 데로 가버린다. 일이 몰릴 때는 5~6개월 급할 때가 있다. 이런 부분은 근로자와 경영진이 협상해서 어느 정도는 합의 하에 탄력적 근무를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이정한 한국여성경제인협회 회장은…

▲1961년 충남 아산 출생 ▲온양여자고등학교 ▲한양대 경영학과 학사 ▲한양대 산업경영디자인대학원 석사 ▲비와이인더스트리 대표이사 ▲(재)여성기업종합지원센터 이사장 ▲동반성장위원회 위원 ▲상생조정위원회 위원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 ▲경기신용보증재단 비상임이사 ▲시흥시 1%복지재단 이사

바이오중기벤처부 금보령 기자 gold@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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