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경기자
하지만 살면서 이것이 나의 행복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발견하며 어쩌면 마냥 걱정할 게 아니라 큰 축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 좋다, 좋아!”라고 많이 말하고 자주 감동하는 친구들, 동료들과의 만남이 그 생각에 힘을 보탰다. 잘 감동하는 습성은 좋은 의견에 쉽게 설득당하고, 상대방의 멋진 점을 바로 인정하고, 평범함에서 비범함을 발견하는 능력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감동하고 칭찬하는 것보단 지적하는 게 멋져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무언가를 날카롭게 평가하는 일은 ‘능력’이라 부르고, 평론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도 있지만, 무언가에 진심으로 감탄하고 좋은 점을 인정하는 것은 보통 능력으로 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누가 그 일을 하라고 칼 들고 협박했냐”는 뜻으로 궁지에 몰린 사람을 비난하는 ‘누칼협’이나 바닥에 떨어진 사람을 조롱하는 ‘나락밈’처럼 서로를 깎아내리고 타인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려고 혈안이 된 요즘은 오히려 좋은 점을 발견하고 경탄하는 것도 능력이지 않을까? 그걸 우리는 ‘감탄력(感歎力)’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마침 읽고 있던 책에서 햇살 같은 문장을 만났다.
<i>남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이유는 결국 자신만이 갖고 있는 스토리가 있기 때문일 겁니다.</i>
<i>-<일을 잘한다는 것></i>
많은 사람이 별로라고 하는 것이 자신에게는 좋아 보인다고 해서, 그게 무조건 본인의 기준이 낮다는 뜻은 아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볼 수 있는 이유는 자신만이 가진 ‘스토리 레이더망’에 걸려서일 수 있다는 사실. 누군가의 깊은 관심사나 고유한 이야기는 어떤 것의 좋은 점을 더 강력하게 당겨서 볼 수 있는 자석이 되기도 할 테니 말이다.
그러니 이제는 감탄을 많이 한다고 걱정하기보단 그저 그 사실에 감사하며 더 자주 감동하고 칭찬하기로 결심했다. (노력한다고 해서 마음껏 되는 것도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비판력이 있다면, 나에겐 감탄력이 있다!”라는 자부심으로 말이다.
-김규림,<매일의 감탄력>, 웨일북, 1만6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