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Next]떨어지는 엔화, 오르는 원화…韓 '수출·성장' 영향은

달러 대비 원화는 강세, 엔화는 약세
원·엔 환율은 860원대까지 크게 하락
엔저 심해지면 日경합 수출 기업 타격
도요타 주가 고공행진, 현대차는 주춤
美 눈치보는 日, 엔저 방어도 쉽지 않아

최근 원화 대비 엔화 가치가 크게 떨어지면서 엔저 현상이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린다. 과거에 비해 한국과 일본의 수출 경합도가 많이 약해진 만큼 엔저로 한국 수출기업이 입는 피해가 크진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일본 내외부 사정으로 엔저 현상이 내년까지 길어질 경우 일부 수출 품목과 여행수지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9일 외환시장에 따르면, 이달 들어 달러 대비 원화는 강세를 나타내는 반면 엔화는 약세가 심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날 오전 9시 기준으로 올해 들어 원화는 달러 대비 3.60% 하락에 그친 반면, 엔화는 13.02% 급락했다. 지난 9월 이후로 살펴봐도 원화는 0.54% 절상했지만 엔화는 3.13% 떨어져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엔·달러 환율은 심리적 마지노선인 150엔 안착을 시도하면서 고공행진 중이다.

이에 따라 원·엔 환율 역시 올해 꾸준히 하락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원·엔 환율은 지난 4월6일 1003.61원까지 올랐다가 7월5일 897.29원으로 급락했다. 이후 약 4개월간 900원대 안팎을 유지하다가 이달 들어 가파르게 떨어지기 시작해 지난 6일 867원대까지 내렸다. 지금은 소폭 반등해 870원 초반대를 나타내고 있지만, 870원대 역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1월 이후 약 15년10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日 금리 크게 못 올릴 것"…엔저 추가 약세 원인

엔화가 이렇게 추가 하락세를 보이는 것은 최근 일본은행(BOJ)의 긴축 통화정책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약해졌기 때문이다. 일본은행은 지난달 31일 장기금리 목표치 상단을 1%로 제시하면서 수익률곡선제어(YCC) 정책을 유연하게 운용하기로 결정했으나, 시장에선 여전히 기대보다 완화적인 수준이란 인식이 많다. '일본이 과도한 엔저와 오르는 물가를 고려해 통화 긴축으로 급격히 돌아설 수 있다'는 전망이 약해지면서 엔화가 더 하락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지평 한국외대 특임교수는 "일본의 물가상승률이 오르고는 있지만 내년에도 3%대는 안 될 거고, 또 내후년에는 다시 1%대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며 "일본은행이 금리를 크게는 못 올릴 거라는 전망이 엔화 약세에 영향을 준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과거 디플레이션 시대에는 물가가 마이너스니까 실질금리는 플러스였는데, 지금은 물가가 플러스가 되면서 금리까지 낮으니까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라며 "물가 상승에 비해 금리 인상폭이 둔한 점도 외환시장에도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원화는 달러 대비 강세를 나타내고 있다. 원·달러 환율(종가 기준)은 지난 1일 1357.3원에서 6일 1297.3원으로 하락했다가 반등해 현재 1310원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이날 원·달러 환율도 전 거래일 대비 1.6원 하락한 1309원에 개장했다. 그만큼 원화가 강세라는 의미다. 이는 최근 국내 수출과 반도체 시장 상황이 개선된 덕분이다. 한국 경상수지는 지난 9월까지 5개월 연속 흑자를 기록했고, 핵심 품목인 반도체 수출 감소폭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엔저 길어지면…韓 수출·여행수지 타격

통상적으로 원화 강세, 엔화 약세가 심해지면 우리 수출에는 부정적인 요소로 받아들여진다. 엔화 가치 하락으로 국제 시장에서 일본 수출 상품 대비 국내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일본과 수출 경합하는 자동차 등 기업의 피해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2006~2008년 당시에는 중국 붐으로 국내 수출이 상당한 혜택을 받으면서 원·엔 환율 800원대는 물론 700원대 환율 수준도 감내할 수 있었지만 최근 글로벌 경기 둔화 등으로 수요 약화가 우려되는 상황인 만큼 엔화 대비 원화 가치의 상대적 고평가 현상이 일부 한-일간 수출 경합 품목의 가격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근 현대차 주가에 비해 도요타 주가 흐름이 상대적으로 양호하다는 점 역시 원·엔 환율이 일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보도에 따르면 도요타자동차의 반기 순이익은 2조5894억엔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2.2 배에 달하면서 주가가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반면 현대차는 좋은 실적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산업의 경쟁 심화로 인한 실적 둔화 우려 때문에 주가가 크게 하락했다.

엔저 심화로 우리나라 국민의 일본 여행이 늘면서 가뜩이나 적자가 심한 여행수지가 더 나빠질 가능성도 있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1~9월 여행수지는 93억7000만달러 적자로 지난해 같은 기간 55억5000만달러 적자에 비해 크게 늘었다.

다만 엔저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진 않을 것이란 분석도 많다. 한은도 지난 여름 엔저 심화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과거와 달리 수출 가격(환율)보다 제품 경쟁력이 더 중요하고, 엔저 지속 기간도 길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특히 하반기 이후 반도체 경기가 되살아나면서 전반적인 수출이 회복되면 엔저에 따른 피해가 상쇄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엇갈리는 엔저 전망…"일본, 美 눈치도 봐야 해"

전문가들은 엔저 지속 기간에 따라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엔화 환율에 대한 전망은 의견이 다소 엇갈린다. 박상현 연구원은 "한국과 일본 간 경제 펀더멘탈 등을 고려할 때 원·엔 환율이 추가 하락하기보다는 900원대로 재차 수렴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전규연 하나증권 리서치센터 글로벌투자분석실 연구원은 "일본 소비자물가가 2024년에도 2%를 상회할 것으로 전망됨에도 불구하고 일본은행은 물가 상승이 수입물가 전가와 유가 상승에 의한 것이라고 과소평가하며 완화적인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다"며 "2024년에도 통화정책 수정 강도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여 엔화 되돌림 폭 제한적일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지평 교수는 "원·엔 환율 860원대는 조금 과도하고 900~1000원 사이가 적절한 것 같다"며 "일본 재무성은 엔화 가치가 서서히 하락하는 것도 펀더멘털에서 이탈하는 것일 수 있다고 논리를 만들고 있기 때문에 추가 엔저를 막기 위한 개입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교수는 "개입하려면 미국 국채를 매각해서 엔화를 사야 하는데 최근 미국 국채 시장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일본도 미국 눈치가 보이는 시점"이라며 엔화 방어가 쉽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경제금융부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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