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길거리 뒤덮는 '정당 현수막'…광고물법 개정 없인 속수무책

국회서 한차례 논의, 소위 통과 못해
"규제할 법적 근거 먼저 만들어져야"

추석을 앞두고 전국 각지에 정당 현수막이 크게 늘어난 가운데 각 지방자치단체가 규제 조례를 속속 만들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인 법안 개정안은 여전히 국회서 낮잠을 자는 상황이다. 지역 정가에서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회에서 법안 처리가 어려울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2일 국회에 따르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지난달 18일 법안심사 제1소위를 열어 정당 현수막을 규제하는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13건에 대한 심사에 나섰으나, 축조 심사(법률안을 한 조항씩 차례대로 낭독하며 심사하는 방식)로 마무리했다. 법안심사소위에서 계속심사를 결정하면서, 관련 법안은 빨라도 국정감사가 마무리된 이후인 다음달에나 논의가 재개될 전망이다.

정당 현수막은 지난해 12월 옥외광고물법이 개정되면서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지자체의 허가나 신고 없이도 정당 정책·현안에 대한 현수막 설치가 가능하다. 그러자 행정안전부는 설치 남발을 막는 가이드라인을 수립, 지난 5월 시행했다. 행안부가 집계한 정당 현수막 민원은 가이드라인이 시행된 5월 3680건이 접수됐다. 한달 전인 4월 4195건과 비교해 12% 감소했지만, 민원은 이후에도 지속되는 상황이다.

이에 각 지자체는 자체적으로 정당 현수막 규제 조례를 마련하고 있다. 울산시의회는 지난달 26일 ‘울산시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 조례안’을 공포·시행한다고 밝혔다.

인천시는 올 6월 ‘정당 현수막을 지정 게시대에만 설치하고 국회의원 선거구별 4개로 제한한다’는 내용의 조례를 개정해 전국 최초로 시행했다. 하지만 행안부가 현행 옥외광고물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대법원에 제소했다. 그러나 대법원이 지난달 14일 ‘문제없다’며 이를 기각해 규제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부산, 광주도 이달 관련 조례를 만들었으며 경북 안동, 세종 등에서도 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한편, 국내 최대 지자체인 서울시는 조례 제정이 늦어지고 있다. 서울시의회는 관련한 조례가 도시계획균형위원회를 통과했지만, 지난달 15일 열린 본회의에서는 안건으로 상정하지 않았다.

각 지역의 정가에서는 이에 대해 내년 총선과 연관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지역 정치권 인사는 "추석은 총선 출마 희망자들이 자신을 홍보할 수 있는 마지막 큰 대목"이라며 "총선 120일 전인 12월 12일부터는 정치현수막 게시가 제한되므로 추석에 집중적으로 홍보 현수막을 내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문제를 풀려면 결국 상위법인 옥외광고물법 개정이 필요하다. 이만희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정당 현수막의 개수·규격·설치장소를 대통령령에 추가하고 위반 광고물을 조치하도록 규정한다. 또, 행정대집행 근거 규정에 법 제8조의 적용을 배제한 광고물을 추가했다. 법적으로 정당 현수막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정당 현수막 제한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현행법은 이를 규제할 근거가 없다"며 "법이 개정되면 지자체에서 이를 바탕으로 현수막을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부 성기호 기자 kihoyeyo@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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