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텐트에서 쪽잠 자며 여고생 기숙사 지키는 교장

휴식권 놓고 사감-학교 간 의견 차 커
조리실도 비슷한 문제로 한 달간 급식 차질

강원도 내 한 고등학교의 기숙사 앞 한쪽 구석에는 지난달 초부터 텐트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이 텐트는 낮 동안에는 비어 있다가 새벽 1시쯤이면 이 학교의 교장이 들어가 새벽 6시까지 머무른다. 교장이 한 달 넘게 이런 불편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이유는 학교 기숙사에서 근무하는 생활 지도원(사감)들의 근로 계약 문제 때문이다.

강원도 A고교 여자 기숙사 앞에 설치된 텐트[이미지출처=연합뉴스]

14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 같은 상황은 지난달 초 A고교 기숙사에서 일하는 생활 지도원들이 밤샘 근무 중 충분한 휴식 시간과 독립된 휴게 공간을 학교에 요구하고 나서면서 시작됐다. 월~목요일 하루 10시간씩 한 주에 총 40시간을 일하고 있는 이들은 오후 6시부터 이튿날 오전 9시까지 15시간 동안 기숙사를 지킨다. 대신 오전 1~6시는 휴게시간으로 정하는 조건으로 학교와 근로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생활 지도원들은 새벽 휴식 시간에도 상황이 발생하면 제대로 쉬지 못할 때가 많으며, 독립된 휴게공간을 보장받지 않아 대가 없이 일하는 '그림자 노동'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교와 여러 차례 협의를 진행했지만,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결국 이들은 오전 1시부터 6시까지 5시간 동안 기숙사를 비우게 됐다.

심야 시간대 기숙사 관리에 구멍이 생기자 학교 관리 책임자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이 직접 나서 학생들을 지키기로 했다. 남자 기숙사는 교감이, 여자 기숙사는 교장이 해당 시간대 생활지도를 맡은 것이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교장과 교감 모두 남성이라 교장은 여자 기숙사에 들어갈 수 없었다. 이에 교장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대신 기숙사 입구 텐트에서 밤을 보내고 있다.

상황이 장기화하자 도 교육청도 중재에 나섰다. 도 교육청은 긴급 대체 인력 투입과 정원 확대 등 여러 방안을 살피고 있지만 당장 합의를 이끌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비슷한 문제로 한 달 동안 급식 파행도

이 학교는 비슷한 문제로 한 달여간 급식 파행도 겪었다. 학생들이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하루 세끼를 모두 제공해야 하는데 조리 종사원 수가 규정보다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한 달 동안 학교는 점심 급식만 제대로 제공했고, 아침과 저녁은 김밥이나 빵 등으로 대체해야만 했다. 학교 측은 조리 종사원들과 긴 시간 협의 끝에 추가 인력 보강으로 문제를 해결해 15일부터 정상 급식을 세 끼 모두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이 학교만의 일이 아니라 기숙사를 운영하는 모든 학교의 일이기도 하다. 기숙사 생활 지도원과 조리 종사원들이 정확한 근무 규정 준수를 요구할 경우, 다른 기숙학교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얼마든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최근 신경호 강원도 교육감이 학력 향상 정책 중 하나로 기숙학교 부활을 공언하고 나선 상황이라 관련 규정 개선이 시급하다.

신 교육감은 지난달 19일 "학교에서 멀리 떨어져 살지 않는 학생이라도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기숙사를 운영하고 점심은 물론 아침과 저녁까지 3끼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슈2팀 김현정 기자 khj27@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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