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비싼 책값, 도서정가제 탓만은 아니다

대중 반대 가장 큰 이유 책값 상승
출간 1년 지난 책 정가 재조정 허용
올 11월 개정 생산적 논의 이뤄져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에서 도서정가제 개선 방향을 주제로 공개토론회를 개최했다. 현장 영상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유튜브로 생중계됐다. 토론회가 진행되는 동안 유튜브 댓글란에 도서정가제 폐지하라는 주장이 빗발쳤다. 현행 도서평가제 여론조사 결과가 공개될 때 댓글창이 가장 들끓었다.

조사 결과 독자(구매자)의 46.2%가 현행 도서정가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답했다. 부정적 평가 비율 22.1%를 압도했다. 소비자들도 도서정가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결과였다. 설문조사는 지난해 종이책과 전자책을 각각 최소 1권 이상 구매한 전국의 남녀 1029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독자의 긍정적 평가 비율은 저자(55.6%), 출판사(67.4%), 서점(60.5%)에 비해 낮았지만 댓글창의 폐지 주장과 현저한 온도차를 보였다. 댓글창에서는 설문조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고 성토하는 글이 이어졌다. 최근 도서정가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설문조사 결과가 반영된 기사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으레 반복되는 풍경이다.

대중들이 도서정가제를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도서정가제 때문에 책값이 비싸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현행 도서정가제가 도서 정가의 10%까지만 할인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가 자체를 조정하는 재정가를 통해 사실상 큰폭의 책값 할인이 가능하다.

김영사는 지난 2월 원래 1만3000원이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고양이를 버리다'의 애초 정가를 절반인 6500원으로 낮췄다. 재조정된 정가 6500원을 기준으로 도서정가제의 최대 할인폭 10%(650원)를 적용해 5850원에 판매했다. 결과적으로 출판사가 정가를 낮춘 덕분에 소비자들은 처음 정가보다 55% 싼 가격에 책을 구매할 수 있었다.

현행 도서정가제는 출간 1년이 지난 책을 대상으로 정가를 재조정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고양이를 버리다'는 2020년 10월 출간돼 정가 재조정이 가능한 책이다. 즉 도서정가제가 10%까지만 할인폭을 제한했다 하더라도 출판사가 의지만 있다면 정가를 조정해 얼마든지 소비자에게 도서를 싸게 공급할 수 있는 셈이다.

출판 관계자에 따르면 2020년 도서정가제 개정 때 할인폭 10% 제한 탓에 도서정가제가 비싼 책값의 원인이라는 인식이 있으니 재정가를 적극 활용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하지만 실제로 재정가를 통한 가격 인하는 많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동안 잉크, 종이 등 원료 값이 많이 오른데다 정가 인하 자체가 출판사나 서점 모두 큰 이익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저가 판매가 출판사 브랜드 이미지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우려도 있었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정가를 인하하느니 차라리 팔리지 않은 책을 폐기하는 편이었다"고 말했다.

도서정가제는 3년마다 개정된다. 워낙 다양한 출판 관계자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데다 동네서점, 공공재로서 책의 가치 등 다뤄야 할 논쟁거리가 많아 개정 때마다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올해도 11월 개정 시한을 앞두고 과거의 논란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충분한 논의와 의견 수렴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다만 단지 도서정가제 탓에 책값이 비싸다는 전제 하에 논의가 이뤄진다면 생산적인 개정이 이뤄지기 힘들어 보인다.

문화스포츠부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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