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한국은행은 美 Fed에 독립적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해 8월말 “한은이 정부로부터는 독립적이지만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로부터는 독립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계속 올린다면 한은도 따라서 올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최근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미국 Fed는 지난달 1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4.50~4.75%로 0.25%포인트 올렸지만 한은은 20여일 후인 지난달 23일 기준금리를 3.5%에서 동결했다. Fed는 오는 21~22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할 예정이다. 인상폭이 0.25%포인트냐 0.50%포인트냐가 문제지, 인상은 기정사실화돼 있다.

지난해 8월과 달리, 갑자기 한은이 Fed로부터 독립적이 됐을까. 한은이 금리를 동결했던 올해 2월 금융통화위원회 후 기자회견에서, 이 총재는 '종전 입장과 상충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지난해 하반기에는 한국의 물가 경로를 가지고 통화정책을 하고 싶었는데 환율이란 변수가 들어왔다”며 “한은이 Fed를 따라가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Fed로부터 독립되냐, 그건 아니고…항상 우리 결정은 주요국 통화정책을 고려하면서 하는데 지난해와 달리 이제는 국내 요인, 물가 패스를 주로 보고 (통화정책을) 할 때가 왔다”고 밝혔다.

당시엔 이게 뭔 소린가 싶었다. 불과 6개월 만에 한은이 Fed를 따라가지 않아도 된다? Fed로부터 독립적인 건 아니라면서…한은은 독립적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아시아경제는 지난 6일 양석준 한은 외자운용원장과의 인터뷰를 내보냈다. '한미 금리 격차가 더 벌어질텐데 자본 유출은 없을까'라는 질문에, 양 원장은 “금리 격차 확대로 자본이 유출되려면 중간 단계로 원화약세(환율상승) 전망이 강하게 형성돼야 한다”며 “향후 환율에 금리 격차 요인이 크게 작용하려면 작년과 같이 미국이 빠르게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답했다.

그제서야 이해가 됐다. 지난해 10~11월 미국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에, 레고랜드 사태로 인한 채권시장 불안까지 겹치면서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450원 수준까지 치솟았다. 당시처럼 금융시장 불안으로 원화약세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는 한은이 Fed를 따라갈 수 밖에 없다. 시장 참가자들이 추가적인 큰폭의 원화약세를 예상하게 되면 자본 유출이 우려되기 때문에, 한은은 원화약세 기대를 꺾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는 환율이 어느 정도 안정됐다. 한은의 기준금리 동결 이후 1230~1240원 수준이던 원달러 환율이 1320원 수준으로 올라갔지만 이내 다시 1300원선 아래로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는 한은이 물가 등 국내 경제 상황을 보고 통화정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 기준금리가 현재 4.75%이고 이달 말 5%또는 5.25%가 될 예정이다. 가장 높게 전망한 미국의 최종금리는 6% 수준이다. 5% 수준에서 추가로 크게 인상되지 않는다면 원달러 환율이 그렇게 높아질 가능성은 없어보인다. 게다가 한은은 긴축 기조를 유지하며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뒀다고 밝혔다. 환율이 급등할 경우에는, 그때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응하면 된다는 게 한은의 판단인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7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에서 “(한은의) 예상대로 2월 물가가 4.8%로 떨어졌고, 3월 이후로는 4.5% 이하로 기대하며 연말에는 3% 초반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은은 4월11일 금통위를 열고 기준금리를 결정할 예정이다. 3월 물가는 그 1주일 전인 4일 발표된다. 한은 뿐 아니라 정부도 3월 소비자물가가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필자는 '환율이 급등하지 않는다면 4월 금통위에서도 기준금리가 동결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경제금융부 정재형 경제금융 매니징에디터 jjh@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