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재테크]갈피 못 잡는 금리 ‘진퇴양난’ 예테크족

외화예금-장기보험 등 대체투자 관심

#직장인 김원영씨(35)는 최근 정기예금 만기가 도래한 목돈 5000여만원을 한 인터넷전문은행의 수시입출금식통장(일명 파킹통장)에 예치했다. 당초엔 주식 투자 등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아직 엄두가 나지 않고, 정기예금에 예치하자니 갑자기 금리가 완만히 상승하는 국면이 도래해서다. 김씨는 “정기예금에 다시 예치하려니 금리가 오를지 내릴지 가늠하기 어렵다”면서 “파킹통장에 넣어두고 상황을 관망하려 한다”고 했다.

지난해 0.1%포인트의 금리차에도 분주하게 움직이던 예테크족(族)들이 '진퇴양난'에 빠졌다. 고금리 상황에도 채권시장 안정의 영향으로 안정세를 보이던 예금금리가 최근엔 기준금리 동결에도 완만히 상승하는 등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처럼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예테크족들은 수시입출금식통장을 통해 숨 고르기에 나서는 한편 안정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잡기 위해 대체투자를 노리고 있다.

8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전일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1년 만기 정기예금 상품 금리는 3.70~3.8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은행별로 보면 하나은행의 하나의정기예금이 3.80%로 가장 높고 우리은행(3.78%), KB국민은행(3.75%), 신한·NH농협은행(3.70%) 등이 뒤따르고 있다.

지난달 초순만 해도 3%대 초반까지 급전직하 했던 예금금리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동결이란 카드에도 상승세로 돌아선 것은 시장금리의 영향이 크다. 최근 미국의 경기 호조세로 긴축이 장기화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해지며 소위 '금리 정점론'이 힘을 잃은 것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년 만기 정기예금의 준거금리가 되는 은행채 AAA등급 1년물 금리는 지난해 11월 초엔 5.104%까지 상승하며 수신금리 상승을 주도했지만, 이후 채권시장이 안정되고 낙관적인 전망이 시장 전반에 흐르며 지난달 초엔 3.540%까지 하락했다. 이후론 금리 정점론이 힘을 잃으면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동결에도 불구하고 은행채 금리는 3.908%(지난 6일) 수준까지 다시 상승세를 탔다.

다만 이런 시장금리 상승에도 지난해와 같은 급격한 예금 금리 인상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지난해엔 이른바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이 수신유치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면서 급리 급등현상이 나타났지만, 현재로선 은행이 재차 수신 경쟁을 벌일 유인이 크지 않은 까닭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은행채 발행도 순차적으로 재개됐고, 지난해 금리 급등기 유치한 예수금이 넉넉한 편이어서 은행으로선 수신 경쟁의 유인이 크지 않다”면서 “시장금리가 상승하면서 예금, 대출금리 모두 완만한 오름폭을 보일 전망이나 지난해와 같은 급격한 금리 인상은 재현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전했다.

이처럼 수신금리의 갈피를 잡기 어려운 상황이 도래하면서 금융소비자의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지난달 5대 시중은행의 수신 잔액에서도 이런 고민이 묻어난다. 5대 은행의 지난달 합산 정기예금 잔액은 전월 대비 3조4506억원 증가하며 3개월 만에 반등했지만, 그 폭은 금리 급등기에 미치지 못했다. 반면 투자 대기성 자금으로 분류되는 요구불예금은 전월보다 20조5503억원 늘어났다. 투자 방향을 설정하지 못한 시중자금이 대거 파킹통장으로 쏠린 셈이다.

주식, 부동산 등 자산시장에도 아직은 부담을 느끼는 투자자들이 적지 않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3일 기준 투자자예탁금 규모는 약 45조6000억원으로 월초(약 51조5000억원)와 비교해 6조원가량 감소했다. 부동산 시장 역시 아직은 '반등'이 본격적으로 나타났다고 보긴 어렵다는 분석이 우세한 상황이다.

금융권에선 당분간 투자자들의 혼란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예금 금리가 지난해처럼 급등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금융소비자들이 올해 경제 상황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면서 투자에 있어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는 까닭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지난해 말 수도권에 거주하는 20~64세 금융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5%는 올해 금융상품 거래 계획과 관련해 '안정형 예·적금에 예치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고위험-고수익 투자를 준비하겠단 응답은 22% 수준에 그쳤다.

금융권에선 이런 '안정적인 투자'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높은 만큼 당분간 고금리 외화 정기예금, 확정금리형 장기 보험상품, 저쿠폰채권 등 대체투자 분야로 눈을 돌리는 투자자들이 많을 것으로 본다. 한 시중은행 PB 담당자는 “지난달 말까지만 해도 확정금리형 장기 보험상품의 금리가 4.5~6% 수준이었는데, 5년만 이를 유지한다고 해도 수익률이 20%에 달한다”면서 “금리 정점론이 다소 휘청이는 상황이 되면서, 아직은 자산가들도 수익률보다는 안정적인 투자수익을 확보하는 데 집중하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경제금융부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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