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굽는 타자기]주류경제학이 놓친 우리의 '연결성'

ㅡ'악마는 꼴찌부터 잡아먹는다'는 서양 속담이 있다. 근대 시대 치명적인 기근과 유행병에 따른 약자의 죽음은, 자원 배분과 노동력 재생산 측면에서 강자에게 보다 유리한 환경을 제공했다.

"굶어 죽는 일은 게으르고 무책임한 개인 탓이다"는 논리가 만들어졌고, 종교는 이를 신의 섭리로 정당화했다. '약육강식의 균형 잡힌 안정'이란 인식은 주류경제학의 강력한 토대가 됐다.

주류경제학은 '경제적 자유'를 최우선 가치로 꼽는다. 돈만 내면 모든 부담(채무)이 해소된다. 오직 시장교환 관계일 뿐,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의무와 책임도 지지 않는다. 이때 권력은 인간의 '죽음'을 관리하며 쓸모가 없는 '죽음'은 내버려 둔다. 모든 것은 화폐적 이득과 경제적 교환으로 정당화된다.

원용찬 전북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의 새 책 '앞으로의 경제학'은 수백년간 강성해진 주류경제학의 오류와 한계를 꼬집고, 경제학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철학적 방향을 보여준다. 이를 위해 사회적 경제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한 칼 폴라니와 신·자연·인간의 필연적 인과관계를 강조한 철학자 스피노자가 책에서 동행한다.

칼 폴라니는 경제적 존재가 아닌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주목했다. 누군가는 '누칼협'(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을 운운하며 애써 연결성을 부정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행동에 대해 절대로 무책임할 수 없다. 어떤 식으로든 서로 의존하고 부담을 주며 살아간다. 의도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선택과 행동이 다른 사람과 사회에 끼친 영향을 미친다. 다국적 착취로 주머니를 채운 유명 스포츠 브랜드, 콜롬비아 토양을 농약으로 버무리는 저렴한 커피 소비, 아마존 숲을 파괴하고 온실가스로 지구 전체의 기후 위기를 재촉하는 육류소비를 떠올려 보자. 산업재해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현장에선 지금도 하청업체의 젊은 청년들이 숱하게 죽어 나간다.

이 같은 실체 경제에선 호혜성(상호성)을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사회적 자유'가 경제적 자유보다 더 효능감을 준다. 사회와 타인에게 빚지고 있다는 채무 의식을 줄여나가려는 실천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더 자유로워진다.

스피노자는 '신은 곧 자연'이라는 범신론을 주장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다른 존재들과 인과관계를 맺는다. 여기서 신은 전통적인 인격신이 아니다. 자연 그 자체나 우주처럼 '모든 것들의 체계'에 가깝다.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처럼, 종말 앞에서 공포와 절망에 얽매이는 대신 선택적 행동을 통해 진정한 '자유'를 찾을 수 있다.

스피노자가 제안하는 사회에선 덕과 이성에 따라 살아가는 '자유로운 인간들'이 모여 산다. 누가 누구를 일방적으로 지배할 수 없다. 이 공동체에선 외부의 이질적인 것을 받아들인다. 피부색과 가치관, 취향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음을 연다.

결국 저자는 강조한다. 탐욕과 화폐를 넘어 새로운 세계의 의미 질서를 찾고, 진정한 기쁨을 얻는 존재가 되자고.

따옴표"옷도, 신발도, 책상도 직접 만든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공부하고 입고 쓰고 돌아다닙니다. 물론 돈으로 다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화폐를 우리 눈앞에서 지우고 분리시켜서 시장 그 너머를 바라봅시다. 화력발전소, 전철, 돼지농장, 오징어 가공공장 등에 하청업체의 비정규직과 외국인 노동자들, 그리고 살처분되는 동물들이 있습니다."

앞으로의 경제학 | 원용찬 지음 | 당대 | 410쪽 | 2만5000원

사회부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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