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 한국은행의 뒤늦은 여풍

기업 女임원비율 한자릿수 그쳐
이창용 총재 女인재 발탁에 힘

[아시아경제 서소정 기자] 한국은행이 최근 인사에서 국장급 여성 승진 비중을 20%로 끌어올리면서 여풍 대열에 뒤늦게 동참했다. 73명의 승진자 중 여성이 18명으로 전체의 24.7%를 차지하면서 역대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특히 1~3급 관리자급 승진자 비중이 처음 20%를 넘어서면서 한은 여성 임직원들 사이에서는 고무적인 분위기가 감지된다. 올해 부임한 이창용 총재가 여성 인재 발탁에 강력히 힘을 실어준 결과다.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팀장에서 국장으로 고속 승진한 사례도 나왔다. 그러나 면면을 따져보면 여성 관리자 숫자는 초라하기 그지 없다. 이번 인사를 포함해 지금까지 1급으로 승진한 여성은 단 4명에 불과하다.

한은 조직도에서 1급 이상의 여성을 찾아보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통화정책국·조사국 등 핵심 보직에서 관리자급 여성을 찾기는 더욱 힘들다. 국내 주요 인터넷 포털에서 1980년대생 여성 최고경영자(CEO)까지 등장하는 시대적 흐름과 비교하면 한참 뒤떨어진 셈이다.

한은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얼마전 만난 한은 고위임원은 "여성의 숫자가 적은 것이냐, (성장할) 기회를 안 준 것이냐"는 기자의 질의에 "둘 다"라고 답했다. 인사 적체가 심각한 데다 ‘한은사(韓銀寺)’란 별명을 가질 정도로 폐쇄적인 조직문화에서 여성들이 도약할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다는 솔직한 답변이 돌아왔다.

다만 희망이 있다면 앞으로 이 같은 분위기가 달라질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추세가 강화되면서 여성 임원 확대에 대한 사회적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한은에서도 1~3급 여성 승진자 비중이 점진적으로 늘고 있다. 입사자 중에서 여성 비율이 높아진 점도 긍정적 변화다. 최근 5년간 신입 직원 현황(G5)을 보면 남성과 여성이 각각 191명, 102명으로 여성의 수가 증가했다.

지난 5월 퇴임한 임지원 금융통화위원은 "여성 보좌역의 비율이 4년 전 0%에서 60%로 급상승한 데 대해 뿌듯함을 느낀다"고 소회를 전했다. 첫 이코노미스트 출신인 임 금통위원은 2018년 한은 최초로 여성 보좌역을 선임했고 꾸준히 늘렸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한 것일까. 지난달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방한에 맞춰 진행된 ‘경제학계와 여성’을 주제로 한 간담회의 열기는 뜨거웠다. 미 여성 최초로 연방준비제도(Fed) 의장과 재무 장관 타이틀을 거머쥔 옐런에게 ‘경력관리 꿀팁’을 묻는 한은 여성직원들의 눈빛에는 진지함이 묻어났다. 옐런 역시 "가사노동을 분담할 수 있는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현실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이들을 격려했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국내 주요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한 자릿수에 그친다. 삼성전자만 보더라도 지난해 기준 국내 임원 1083명 가운데 여성은 60명(5.5%)에 불과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믹스가 지난 3월 발표한 ‘유리천장 지수’에서 한국은 29개국 가운데 최하위로 평가됐다. 유리는 깨질 때 더 빛난다. 초기 내각 인선에서 서오남(서울대·50대·남자) 비판을 받았던 데 이어 최근 지지율 하락으로 인적쇄신론이 불거지는 윤석열 정부도 새겨듣길 바란다.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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