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슬기기자
'계곡 살인 사건' 피의자 이은해를 옹호하는 팬클럽이 등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사진=카카오톡 오픈채팅방 '가평계곡 사건 이은해 팬방' 캡처.
[아시아경제 윤슬기 기자] '계곡 살인 사건' 피의자로 공개수배된 이은해를 옹호하는 팬클럽이 등장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이은해의 외모에 호감을 느낀 이들을 주축으로 팬클럽이 형성된 것인데, 그의 범죄성을 희석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전문가는 범죄자 외모를 추종하는 팬클럽에 대해 사회의 관심을 끌기 위한 의도라고 분석했다.
최근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이은해 팬클럽으로 보이는 다수의 단체대화방이 운영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11일 카카오톡에서 '이은해'를 검색하면 '이은해 팬톡방', '계곡 이은해 팬톡방', '은해의 은해 이은해 팬클럽' 등 여러 단체 대화방이 나타났다.
이 대화방에 참여한 이들은 계곡 살인 피의자 이은해를 옹호하는 내용의 대화를 주고 받았는데, 심지어는 '외모가 예쁘면 죄가 용서된다'는 말까지 나온 것으로 드러났다. 90여명이 참여하고 있는 한 대화방에는 "범죄는 중요하지 않다. 얼굴이 중요하다. 예쁘면 모든 게 용서된다"라는 공지글이 게재돼 있었고, 누리꾼들은 이은해의 사진을 공유하며 "솔직히 이은해가 잘못한 게 있다면 너무 예쁜 죄", "사랑한다", "비키니 사진 보고 반했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은해와 공범 조현수는 수영을 못하는 이은해의 남편 A씨에게 다이빙을 하게 한 뒤 구조하지 않고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이후 이들에 대한 본격적인 소환조사에 나섰고, 이은해와 조현수는 2차 소환조사를 앞두고 잠적했다. 수사당국이 이들을 공개수배한 지 2주가 넘었지만 아직까지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앞서 '계곡 살인 사건'은 지난 2020년 10월 SBS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 알려지며 세간의 이목을 모은 바 있다. 방송에서 이 사건의 의혹을 다룬 데다가 이은해의 도피 행각이 길어지면서 그의 과거 범죄 이력, 방송 출연 모습까지 재조명되다 보니 결국 이은해 팬클럽까지 등장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1999년 7월16일 전남 순천에서 탈옥수 신창원이 시민 제보로 검거됐다. 사진은 경찰서 이송 당시 모습.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범죄자의 호감형 외모에 매력을 느낀 이들이 '팬클럽'을 형성하는 건 이전부터 종종 있어 온 일이다. 1990년대 후반 탈옥 907일만에 검거된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도 뛰어난 패션감각과 외모로 이른바 '신창원 신드롬'을 일으키기도 했다. 신창원은 1997년 강도살인치사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8년째 복역 중이던 인물로, 교도소에서 탈옥 후 신출귀몰한 도피 생활로 화제가 됐다.
이후 범죄자 최초로 그를 대상으로 한 팬카페가 개설됐고, 체포 당시 입었던 무지개색 셔츠는 품절 대란이 일어나는 등 블레임룩(blame look)의 원조가 되기도 했다. 블레임룩이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인물의 패션을 일반인들이 따라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팬클럽이 범죄자를 마치 '스타'처럼 띄우면서 그들이 저지른 잔혹한 범죄를 희석시킬 수도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30대 직장인 김모씨는 "다른 죄도 아니고 살인죄로 수배 중인 사람의 팬클럽을 만들어서 외모 칭찬을 늘어놓는 게 상식적으로 볼 때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인데, 미화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범죄자 외모를 추종하는 팬클럽에 대해 전문가는 사회적 관심을 끌기 위한 행태라고 지적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미국에서도 1970년대 여성 30명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테드 번디와 결혼하겠다고 나섰던 이들도 있다. 결국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보려는 행동들"이라며 "이런 팬클럽이 언론 보도를 통해 관심을 받게 되면, 자신들의 존재감이 부각되는 것처럼 보이게 되기 때문에 이 같은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결코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이은해 팬클럽을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자 현재 이은해 관련 팬클럽은 비공개 전환되거나 삭제된 상태다.
윤슬기 기자 seul97@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