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톺아보기]미래 에너지를 향한 새로운 길

새해가 되면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명화 ‘길(la strada)’을 떠올리게 된다. 이탈리아 시골을 배경으로 유랑극단 차력사 잠파노는 젤소미나를 조수로 데리고 다닌다. 어느 날 잠파노는 사소한 다툼으로 곡예사를 살해하게 되고 이를 목격한 순박한 소녀 젤소미나가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자 그녀를 버리고 도망친다. 시간이 흘러 젤소미나가 불렀던 멜로디가 들여오자 잠파노는 그녀를 생각했지만 그녀는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뒤였다.

1957년에 제작된 흑백영화였지만 줄리에타 마시나와 안소니 퀸의 연기는 명장면을 만들고 있다. 인간의 감정과 행위를 소리 없이 보여주는 무성영화의 독특한 매력들로 빼곡하다. 펠리니 감독은 사람이 다니는 길에서 인생의 길을 찾는 묵직한 주제를 전하고 있다. 마치 길에서 길을 묻는 것처럼.

프랑스 남부 작은 마을 카다라쉬에는 또 다른 길이 있다. 바로 국제핵융합연구센터(ITER)이다. 이곳에서는 화석 연료 고갈 위험과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 핵융합실험로를 공동 건설하는 초대형 연구개발이 진행 중이다. 핵융합 발전 과정에서 생성되는 플라즈마를 보존하기 위해 도넛 모양의 자기장 장치인 토카막을 만들고 있다. 이것은 새로운 길이다. 지금까지 없었던 대형 원자로를 만들고 있는 이터(ITER)는 라틴어로 ‘길’을 뜻한다.

이터는 2007년 10월 24일에 공식적으로 설립되었다. 유럽 연합, 미국, 일본, 러시아를 비롯해 우리나라와 인도, 중국이 회원국으로 공동 참여하고 있다. 이터의 목적은 인공태양과 같은 대형 핵융합로를 만드는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무공해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다. 따라서 핵융합과 제어 및 진단 시스템, 원격 유지보수를 포함한 핵융합 발전소 운영에 필요한 기술을 실험하고 입증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터 단지는 2013년에 착공되었고 토카막 조립은 2020년에 시작되었다. 초기 예산은 60억 유로에 가까웠으나, 건설 및 운영의 총비용은 최대 650억 유로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터 프로젝트는 인류 역사상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과학실험이라고 한다. 또한 가장 복잡한 엔지니어링 프로젝트이며, 가장 야심찬 국가 간 협력사업 중 하나다.

이 프로젝트가 당초 계획과는 달리 다소 지연되고 있어 우려스러운 면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이터 프로젝트에 참여한지 약 10년 만에 한국 과학자들이 핵심 요직을 맡게 된 것은 물론 50여명의 기술자들이 상주하고 있다는 것 은 주목할 만한 점이다. 세계 선진국들이 참여한 인류 최대의 프로젝트에서 한국의 기술력과 리더십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길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사람이 다니는 공간이라는 뜻 외에도 방법이나 수단이라는 의미도 녹아 있다. 잠파노가 영화 길에서 인생의 가치를 물었다면, 지금 이터에는 많은 과학자와 가술자들이 새로운 과학적 길을 찾고 있다. 아직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그 길에는 인류의 공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숭고한 노력이 가득하다. 새로운 길을 가고 있는 한국인 기술자들에게 새해를 맞아 성원의 갈채를 보내드린다.

김영우 동반성장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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