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톺아보기]'오징어 게임'에 2화가 없었다면…

"나가면 뭐가 달라져? 똑같은 지옥이야." '오징어 게임' 2화에 등장하는 대사다. 삶의 벼랑 끝에서 마지막 희망을 품고 게임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1화에서 탈락의 결과가 곧 잔혹한 죽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투표를 통해 게임을 중단하고자 한다. 하지만 투표에 앞서 무려 456억원에 달하는 최종 상금 액수가 발표되자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당장 나가게 해달라고 빌었던 자들도 돌변한 태도로 외친다. 어차피 바깥세상도 게임 속과 다를 바 없는 지옥이라고.

'오징어 게임'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국내 시청자들의 반응은 호평만이 아니었다. 제일 먼저 불거져 나온 논란이 표절설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참가자들이 목숨을 건 생존 게임을 펼치는 과정을 담은 '데스 게임' 장르의 대표작들이 연상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실제로 연출을 맡은 황동혁 감독은 '배틀로얄', '도박 묵사록 카이지', '라이어 게임' 등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 바 있기도 하다.

어느덧 공개 한 달째, 갈수록 거세지는 글로벌 신드롬 속에서 '오징어 게임'에 대한 평가는 완전히 달라졌다. 특히 처음 지적받은 기존 데스 게임 장르물들과의 유사성보다 차별성에 초점을 맞춘 호평이 늘어났다. 게임 자체의 긴장감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작품들과 달리 게임 바깥의 더 살벌한 현실이 숨통을 조이는 구조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성격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것이 바로 2화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게임을 계속하자는 몇몇 선동에도 불구하고 다수 사람은 고민 끝에 중단을 선택한다. 투표 결과에 따라, 반대편 사람들까지 모조리 게임 밖으로 나가게 된다. '오징어 게임' 2화는 그렇게 세상에 돌아간 참가자들이 새삼 그들을 둘러싼 현실이 얼마나 지옥 같았는가를 다시금 깨닫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자본주의 사회의 승자 독식 구조 안에서 밑바닥에 있는 이들일수록 현실은 더 가혹하다. 브로커에 사기당해 어린 동생을 보육원에 맡긴 채 닥치는 대로 돈을 벌어야 했던 탈북민 새벽(정호연), 공장에서 손가락 절단 사고를 당했으나 병원비는커녕 밀린 월급도 받지 못한 이주노동자 알리(아누팜 트리파티)가 대표적이다.

이들보다 상대적으로 덜 차별받는 위치의 성기훈(이정재)도 희망이 없긴 마찬가지다.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동차 회사 노동자로 일하던 그는 사 측의 구조조정으로 퇴직을 당하면서부터 삶의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자영업에 뛰어들었으나 잇달아 실패하고 이혼까지 당해 딸과도 헤어진다. 영업 실패로 얻은 사채는 갈수록 불어나고 끝내 신체 포기 각서까지 쓴다. 기훈의 좌절은 한번 경제적 약자로 전락하면 이전의 삶을 회복하기가 불가능해진 사회를 증명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비극적이다.

'오징어 게임'이 다른 데스게임 장르물보다 느슨하고 두뇌 게임도 치열하지 않다고 지적하는 이들은 흔히 2화가 제일 지루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2화야말로 데스게임이라는 가면 속의 맨얼굴이 자본주의 사회의 잔혹한 현실임을 이야기하는 주제의식의 결정판이다. 본경기는 구원 없는 현실을 절감한 이들이 다시 게임장으로 돌아오면서 비로소 시작된다. 그들은 눈앞에 보이는 총 너머의 진짜 지옥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싸운다. '오징어 게임'의 탁월함은 그 게임 바깥에 대한 무거운 현실 인식에 있다.

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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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레저부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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