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만 지키는 9·19군사합의…뒤늦게 北에 항의문

'김정은 해안포 사격지도' 국방부 항의문 발송
계속된 군사합의 불이행에 대응수위 높이는 듯
다만 北훈련 알고도 '뒷북 대응' 논란 불가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조선인민군 제5492군부대관하 여성중대를 시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5일 이 사진을 보도했다. 촬영 날짜는 밝히지 않았다. (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김동표 기자, 문제원 기자] 국방부는 26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창린도를 시찰하면서 해안포 사격 지도를 한 것과 관련해, 서해지구 군통신망을 통해 북한 측에 강력하게 유감을 표명했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오늘 오전 서해지구 군통신선을 이용해 북측에 강하게 항의했다"며 "구두로 항의하고 항의문도 보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항의문을 통해 "앞으로 유사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9·19 군사합의를 철저히 준수할 것으로 강력히 촉구했다"고 강조했다.

9·19 남북군사합의와 관련해 정부가 북한에 통지문으로 항의의 뜻을 전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이 접경지역에서 대놓고 군사합의를 위반한만큼 정부가 그간 '북한 눈치보기'에서 벗어나 대응 수위를 높이는 모습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북한의 해안포 사격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묵인하고 있었다는 비판에 대응하는 차원으로도 해석돼 실제 대북 스탠스가 강경 대응으로 전환하느냐를 놓고 논란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전날 최 대변인은 '전통문 등을 통해 북측에 공식적으로 항의할 것이냐'는 질문에 "추후 조치에 대해선 다시 말씀을 드리겠다"고만 했다. 하루만에 입장을 바꿔 항의 차원의 전통문을 전달하기로 한 것은 그만큼 상황이 위급하다는 인식이 반영됐다.

정부는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에도 북ㆍ미 대화의 추이를 지켜보며 로키(low-key)로 대응해왔다. 그러나 남북 간의 신뢰를 최소한으로 담보해오던 9·19 군사합의마저 북한이 위반하자 더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9·19 평양공동선언 이후 남북은 철도ㆍ보건ㆍ양묘장ㆍ체육ㆍ의료ㆍ주민송환 등 각 분야에 걸쳐 전통문을 주고받았지만 9·19 군사합의에 관해 유감의 뜻을 담아 전통문을 보낸 적은 없었다.

이날 군 안팎에 따르면 김 위원장이 서해 완충지역인 창린도를 방문해 해안포 사격훈련을 지시한 것은 명백한 9ㆍ19 군사합의 위반으로 평가된다. 창린도는 남측 관할인 대청도에서 동쪽으로 약 35㎞, 서해 북방한계선에서 약 10㎞ 밖에 떨어지지 않은 북한의 최전방이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 (사진=연합뉴스)

북한의 계속된 군사합의 불이행에 지난해 9월19일 평화의 시대를 꿈꾸며 체결한 '9ㆍ19 남북군사합의'가 사실상 남한만 지키는 합의서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북한은 합의서에 적시된 내용 중 상당 부분을 이행하지 않으며 대남 도발을 지속하고 있지만, 남한은 훈련ㆍ작전ㆍ정찰 등에서 이를 철저히 준수하고 있어서다.

대표적인게 비무장지대(DMZ) 내 화살머리고지 남북 공동유해발굴이다. 남북은 합의서에서 올해 2월까지 80~100명으로 구성된 발굴단을 편성하기로 했지만 북측이 호응하지 않으면서 군사합의 조항 중 첫 불이행 사례가 됐다. 남한은 올해 단독으로 유해발굴 작업을 진행하다가 현재 마무리 정리 작업을 실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동경비구역(JSA) 자유왕래와 한강 하구 민간 선박 자유항해도 사실상 무산됐다. 당초 남북은 빠른 시일 내에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열어 군사합의의 이행 상황들을 점검하기로 했지만 이 역시 회의는커녕 위원회 구성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북한은 지난 5월 이후 12차례에 걸쳐 '북한판 이스칸데르'와 신형 대구경 조종방사포, 신형 전술 지대지 미사일, 초대형 방사포 등을 잇따라 발사해 군사합의 1조에 명시된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 전면 중지'를 위반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많았다.

북한이 군사합의의 마지막 보루로 평가되는 완충구역 사격훈련까지 실시했지만 우리 군은 합의 사항에 적시된 내용들을 철저히 준수하는 중이다. 군 당국은 군사합의 체결 전후로 백령도ㆍ연평도 등에 배치된 K-9 자주포와 전차 등을 배에 실어 내륙으로 옮긴 뒤 사격훈련을 하고 있다.

해병대는 서북도서 포병부대의 이 같은 순환훈련에 대해 "상륙함정과 동원선박을 활용한 탑재, 이동, 양륙과정 전반을 숙달할 수 있는 기회"라는 입장이지만 올해 상반기 포ㆍ장병 이동에 3억7000여만원이 들어 비용ㆍ시간적 손해가 만만치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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