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 밀대가 가능한 동작에 대하여/박지웅

첫날부터 바닥을 닦았지요 명랑하게 물먹은 머리채를 앞뒤로 밀었지요 성실하고 지긋지긋한 이 동작은 누가 정한 것도 아닌데 밀대의 방향은 일정하고 밀대는 밀대 안에 갇혀 있습니다 들쑤시며 앞뒤로 움직이는 것 말고 다른 길은 없습니까 생긴 대로 살아야 합니까 죽을 때까지 바닥만 보며 죽어지내야 합니까 우리는 우리를 진절머리 치며 머리채를 흔듭니다 밀대가 가능한 동작에 대하여 멀대처럼 서서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아무리 비벼 보아도 우리는 이 근무를 벗어날 길이 없어요 물통에 쓰라린 머리채를 집어넣고 빼서는 꾹꾹 밟지요 옥상에서 머리를 식히는 게 전부죠 얼굴에 구정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다소 뒤처리가 우스꽝스럽습니다만. 나는 나를 삐딱하게 세워 두지요 흥건하게 뒤집어쓰고 또 시름시름 마르겠지요 거꾸로 기대서는 맹랑한 자세는 밀대에게 배웠지요 희망적인 구석이 있는 역류의 자세라고 위안을 삼지요 여하튼 어렵게 직원으로 태어난 마당에 서로 물먹고 물먹이면서 명랑하게 때로는 맹랑하게 우리는 매일매일 밀대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바닥의 이름으로

■ 바닥의 이름으로 우리는 밀대를 밉니다. 바닥의 이름으로 우리는 쓰레기를 치웁니다. 바닥의 이름으로 우리는 계산을 하고 바닥의 이름으로 우리는 경비를 섭니다. 그렇습니다. 바닥의 이름으로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바닥의 이름으로 우리는 바닥에 떨어진 돈을 벌고 바닥의 이름으로 우리는 밥을 먹습니다. 바닥의 이름으로 우리는 잠이 들고 바닥의 이름으로 우리는 사랑을 하고 바닥의 이름으로 우리는 장차 바닥이 될 아이들을 키우다 바닥의 이름으로 죽을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저 한없는 바닥으로 죽어지내다 마침내는 "명랑하게 때로는 맹랑하게" 바닥에 우뚝 선 밀대가 될 것입니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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