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비 통해 협력 배우고 폭력성향 해소…트레이너 꿈 생겼어요'

[수갑 찬 소년 품어줄 사회는 없나]<4>맞춤 재사회화로 소년 보듬는 영국런던 캠던 소년범죄대응팀의 럭비 프로그램지역 클럽·봉사자들 통해삶 동기부여·개개인 교육효과소년범 최대 90% 의사소통 장애학습장애 교정·언어치료 연계

영국 런던 팔리아멘트 힐 공원의 한 럭비 구장, 범죄 전력이 있는 10대 소년들이 연습경기를 하고 있는 모습

[런던(영국)=아시아경제 정동훈 기자] 영국 런던 팔리아먼트 힐 공원의 한 럭비 구장. 10대로 보이는 20여명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들어섰다. 앳된 얼굴을 한 이들은 '범죄 소년'들이다. 6개월 이상 소년 교도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고 출소했거나 소년 법원에서 사회복귀 명령을 받고 런던 캠던 소년범죄대응팀에 위탁된 소년들이다.

사회복귀 명령은 범죄를 저지른 18세 미만의 소년에게 최장 3년의 기간을 정해 교육 명령, 정신치료 명령 등 한 가지 이상의 의무사항을 이행하도록 하는 법원 명령이다. 이들은 매주 수요일 2시간 훈련을 하고 지역 럭비 리그에 출전한다.

이 럭비 프로그램은 젊은이들의 거리라고 불리는 캠던 지역의 럭비 클럽과 연계해 소년범들에게 제공하는 '겟온사이드(Get onsideㆍ지속적인 지지)'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럭비 클럽의 코치들이 자원봉사 차원에서 멘토링 활동을 하면서 이들이 사회로 나올 때 진로 상담, 지역 스포츠 클럽 연계 등의 역할을 한다.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152개 소년범죄대응팀은 지역마다 자원봉사자 등과 연계된 프로그램을 통해 소년들의 재사회화를 돕고 있다.

기자가 공원을 방문한 날에는 체력 훈련이 한창이었다. 럭비는 공을 가진 선수를 붙잡거나 넘어뜨릴 수 있어 격렬하면서도 강인한 체력을 요구하는 운동이다. 20m가량을 왕복해서 달리는 '셔틀런' 훈련이 진행되자 섭씨 20도의 쾌적한 날씨에도 소년들은 흠뻑 땀을 쏟았다. 상대 팀과 어깨를 밀착해 힘을 겨루고, 공을 빼내는 스크럼 훈련이 이어졌다. 연습경기 도중에는 간간이 욕설이 튀어나오기도 했지만 팀의 승리를 위해 온전히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캠던 소년범죄대응팀의 매니저 샬럿 메일은 "럭비와 같은 팀 스포츠는 득점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서로 협력하는 모습을 보인다"며 "이 과정에서 어떻게 의사소통하는지, 협력하는지에 대한 방법을 배우고 있다"고 밝혔다.

영국 런던 팔리아멘트 힐 공원의 한 럭비 구장, 범죄 전력이 있는 10대 20여명과 소년범죄대응팀 직원들이 럭비 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소년범들의 정신 건강 개선 효과도 있었다. 영국 범죄 소년 중 상당수는 정신 건강이나 다른 건강 문제가 있다. 영국 소년사법위원회의 소년사법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교도소에 수감된 소년 중 25%가 정서 또는 정신 건강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지난해 수용기관에 구금된 소년 100명당 월평균 7.7건의 자해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캠던 소년범죄대응팀의 럭비 프로그램 자문에 응하고 있는 심리학자 로지 미크는 "스포츠는 어린 범죄 소년들에게 새로운 삶과 일상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고 개개인에게 교육적인 효과를 가져다준다"며 "감정을 컨트롤하고 폭력 성향을 다른 곳으로 분출하고 해소할 공간이 있다면 이들은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소년범들은 럭비를 통해 새로운 꿈을 꾼다. 헤로인 등의 마약을 복용해 수감생활을 했던 앤드루 힐라스(가명)는 "책상에 앉아 수업을 듣는 것은 사실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사회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훈련이 럭비라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법원으로부터 교육 명령을 받은 로버트 에번스(가명)는 "럭비를 접하면서 운동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었다"며 "앞으로 지역 체육관에서 개인 트레이너로 근무하고 싶다"고 했다.

범죄 소년 중 60~90%가 말하기, 언어, 듣기 능력과 관련해 의사소통 장애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국제적으로 소년 교도소 수용 인원 중 주의력 결핍 및 과잉 행동 장애(ADHD) 유병률은 30%로 나타나며, 이는 일반인에 대한 국제적 추정치보다 5배나 높은 수치다. 알렉스 브라운 럭비 코치는 "럭비 프로그램은 학습 장애 교정 수업, 언어 치료 수업과 같이 사회에 연착륙하도록 돕는 하나의 서비스"라며 "다른 이들과 협력하고 팀에 녹아드는 럭비 선수로 변해가는 것처럼 이들이 더 좋은 사람(better person)으로 사회에 서길 바란다"고 말했다. ?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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