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분쟁發 '퍼펙트 스톰' 예고…반도체, 시장전망 전면 재수정

화웨이 공급중단 메시지 나올 경우 하반기 영업 빨간불
가격 하락세 지속될 듯…수출 흔들려 경제 직격탄 우려

[아시아경제 안하늘 기자] 반도체 업체 A사의 해외 영업 담당 임원은 최근 보고서를 작성하다가 고민에 빠졌다. "시장 상황이 급변한 만큼 전망에 별 의미가 없다"는 상부의 지시로 시장 전망치 자료를 삭제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앞으로 보고에서 시장 전망을 빼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미국, 중국 정치 기사를 스크랩 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마땅히 없다"고 호소했다.

미ㆍ중 무역분쟁이 격화되면서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불확실성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체들은 글로벌 경영 환경이 예측 불가능한 상황으로 전개되면서 하반기 시장 전망 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전면 재수정 뿐이다. 당초 업계에서는 1∼2분기 바닥을 찍고 하반기부터 회복세로 돌아서는 '상저하고'를 예상했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퍼펙트 스톰'이 올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미ㆍ중 무역분쟁에 하반기 영업 '빨간불'

지난달 말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사설은 산업 전체에 큰 충격파를 줬다. 미국이 2000억달러 중국 수입품에 대한 25% 관세를 부과하자, 인민일보는 "우리가 경고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이는 중국의 외교적 수사 중 최고 강도의 경고로, 중국이 인도와 전쟁을 치르기 직전인 1962년과 베트남 전쟁 전인 1979년 등 역사상 단 2번만 사용됐다. 중국이 사실상 미국과의 전면전을 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문제는 미국 정부 역시 전면전을 불사하면서 양국 간 갈등이 장기화될 조짐이 보인다는 점이다. 미국이 대놓고 전세계 IT 업체들에게 탈(脫) 화웨이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어느 하나도 선택할 수 없는 기로에 놓였다. 공개적으로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공급을 중단하라는 메시지가 나올 경우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하반기 영업에는 빨간불이 들어올 수밖에 없다. 이미 중국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 반독점국은 지난해 초부터 삼성전자,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반도체 3사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만큼 즉각적 조치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하반기에도 반도체 가격 하락세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달 PC에 주로 사용되는 D램 고정 거래(기업 간 대량 거래) 가격은 3.75달러에 그쳤다. 4월보다 6.25% 떨어진 수준이다. 4달러 선이 붕괴된 것은 2016년 10월 이후 처음이다. 지난해 9월 8.19달러 대비 54.2%가 떨어졌다.

낸드플래시 역시 지난 4월(3.98달러) 이미 4달러 선이 무너졌고, 지난달에는 3.93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말부터 6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다. D램, 낸드플래시의 가격 하락은 곧바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실적에 악영향을 준다. 이미 두 업체는 올 1분기 영업이익이 반토막이 났다.

D램익스체인지 측은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D램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양국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올해 하반기 D램 가격은 당초 예상보다 더 심하게 흔들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수출 대들보 반도체, 한국 경제 '휘청'

중국이라는 국가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화웨이로 시작된 미ㆍ중 갈등은 산업계 전체에 확산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비중은 약 40% 수준이다. SK하이닉스의 올 1분기 중국 매출도 3조1580억원으로 전체의 46.7%를 차지했다. 반도체 수출이 우리나라 전체의 20%를 차지하는 것을 감안하면 중국 수출길이 영향을 받는 것만으로 국가 수출의 8%가 흔들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올 하반기 반도체 수출이 지난해 대비 20%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미ㆍ중 무역전쟁이 격화될 경우 반도체는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으로 전망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우리 기업, 정부 모두 미ㆍ중 무역분쟁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조치가 거의 없어 답답할 노릇"이라며 "결국 현재의 갈등이 무사히 끝나기만을 바라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 ahn708@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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