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인멸 지시' 삼성전자 부사장 2명 구속…'윗선' 규명 속도

"직원들, 사업지원TF의 위세에 눌려 증거인멸" 주장한 김태한 대표는 영장 기각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한 증거를 인멸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는 김모(54) 삼성전자 사업지원TF 부사장과 박모(54) 삼성전자 부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면서 그룹 '윗선'을 향한 수사가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송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4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연뒤 25일 오전 1시30분께 "범죄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며 김 부사장과 박 부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각각 발부했다. 반면 함께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김태한(62) 삼성바이오 대표이사에 대해서는 "다퉈볼 여지가 있다"며 구속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들은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한 검찰의 수사에 대비해 삼성바이오와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삼성에피스)의 회계자료와 내부 보고서 등을 은폐·조작하도록 총괄적으로 지시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구속된 부사장들과 김 대표를 포함한 삼성 수뇌부가 지난해 5월5일 어린이날에 삼성전자 서초사옥에 모여 증거인멸 계획을 논의한 정황을 파악했다.

삼성전자 부사장 2명에 대한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는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한 증거인멸 과정에 그룹 차원에서의 조직적 개입이 있었음이 인정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바이오와 삼성에피스 임원급 실무자들은 5월5일 회의가 있은 후 직원들의 노트북과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이재용 부회장을 지칭하는 'JY', 'VIP', '합병', '미전실' 등 단어를 검색해 관련 문건을 삭제한 것으로 파악됐다. 삼성바이오와 에피스가 회계자료가 담긴 회사 공용서버 등을 직원 자택과 공장 바닥에 은닉한 사실도 드러났다. 또 '부회장 통화결과', '바이오젠사 제안 관련 대응방안(부회장 보고)' 등의 파일 1기가바이트 분량을 삭제했는데, 삭제한 검색어 중에는 그룹의 극비 프로젝트였던 '오로라'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구속을 피한 김 대표의 주장도 그룹 '윗선'으로부터의 조직적 증거인멸 지시가 이뤄졌음을 뒷받침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대표는 영장심사에서 "공장 바닥에 증거를 은닉한 사실을 몰랐으며 이렇게 광범위한 증거인멸이 있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면서 "삼성전자 사업지원TF의 위세에 눌려 (직원들이) 증거를 인멸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5월5일 열린 그룹 수뇌부 회의와 관련해서는 "참석했지만 그 자리에서 아무 발언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송 부장판사는 김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작년 5월 5일 회의의 소집 및 참석 경위, 회의 진행 경과, 그 후 이뤄진 증거인멸 내지 은닉행위의 진행 과정, 김 대표의 직책 등에 비춰보면 증거인멸교사의 공동정범 성립 여부에 관해 다툴 여지가 있다"고 했다.

검찰은 "조직적 증거인멸 행위에 대한 수사를 계속하는 한편, 기각 사유를 분석해 영장 재청구 여부 등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 부사장들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면서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TF 사장의 소환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 사장은 2017년 미래전략실이 해체와 동시에 퇴사했다가 사업지원TF 신설에 맞춰 복귀했다. 검찰은 정 사장의 지시에 따라 사업지원 TF가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에 관여하고 이 부회장에게도 관련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박나영 기자 bohena@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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