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희의 On Stage] '열정은 100도씨…왕체력에 별명은 박지향'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 마리? 김소향

김소향 [사진= EMK엔터테인먼트 제공]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뮤지컬 배우 김소향(40)은 지난해 12월 뮤지컬 '마리 퀴리'에서 주인공을 맡아 연기했다. 지금은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에서 베토벤의 친구 '마리'를 연기한다.

마리 퀴리에서 김소향의 비중은 절대적이었다. 넘버(뮤지컬에 등장하는 노래) 중 절반가량을 소화했다. 어두운 무대에서 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넘버를 불러야 하는 장면도 있었다. 외로움과 부담감을 떨쳐내야 하는 상황. 김소향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고음의 넘버들을 안정적으로 소화하면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침착하게 관객들과 눈을 마주쳤다. 애절한 눈빛은 '날 봐, 내가 바로 마리 퀴리야!'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는 자신이 공연에서 부른 노래를 듣지 못한다. '악! 왜 이렇게 불렀지'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런 그가 마리 퀴리 무대에서 어떻게 홀로 관중 수백 명과 눈을 마주칠 수 있었을까.

"배우가 무대에서 관객들을 끌어당기지 못하면 배우로서 힘을 잃는다. 관객들은 자신감이 없는 배우에게 끌리지 않는다. 내 것을 만들어 자신감 있게 연기를 해야 관객들이 따라온다. 역설적이지만 뮤지컬 배우로서 가장 힘든 점은 나 자신이 너무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 위에서는 자신감 있게 연기하는 것이 배우로서 나의 의무다."

강단이 느껴지는 말. 그는 자신을 '열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 열정을 마리 퀴리와 같은 창작 초연 작품에 쏟아낸다.

루드윅도 창작 뮤지컬이다. 지난해 11월 초연 무대에 이어 이번 재연 무대도 함께한다. 루드윅을 연출한 추정화(46)는 초연을 준비하면서 김소향에게 도움을 청했다. 둘은 2003년 뮤지컬 '페임'에 출연하면서 친해졌다. 서로에게서 뜨거운 열정을 느꼈다.

"언니가 남긴 명언이 있다. '물은 99도에서 절대 끓지 않는다. 100도가 돼야 끓는다. 너희들은 늘 100도를 만들어서 무대에 올라야 한다.' 연출이 그런 말을 하면 배우들은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아무도 불만을 나타낼 수 없다. 언니가 그만큼 뜨겁고 열정적이다."

루드윅의 마리는 가상의 인물. 마리 퀴리만큼 뜨거운 열정을 가진 캐릭터다. 어린 시절 베토벤과 같은 동네에 살면서 베토벤의 연주를 듣고 용기를 얻고 여성에게 금지된 건축가의 꿈을 꾼다. 그 뜨거운 열정이 자살을 시도하려는 베토벤을 절망에서 구해낸다. 마리는 자신은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며 새로운 삶을 살게 됐는데 왜 자신에게 희망을 심어준 베토벤을 스스로 삶을 포기하려 하냐고 말한다.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 [사진= 과수원뮤지컬컴퍼니 제공]

김소향은 다음 달 15일부터 뮤지컬 '엑스칼리버'에도 출연한다. 그는 '기네비어'를 연기한다. 공교롭게도 현재 충무아트센터에서 같은 소재의 뮤지컬 '킹 아더'가 공연 중이다. 킹 아더의 기네비어는 전형적인 공주다. 예쁜 옷을 입고 나와 예쁜 춤을 추며 아더 왕의 보호를 받는다. 열정이 넘치는 마리 퀴리와 루드윅의 마리와는 결이 많이 다른 느낌이다. 김소향은 엑스칼리버의 기네비어는 킹 아더의 기네비어와 완전히 다른 인물이라고 했다.

"엑스칼리버의 기네비어는 톰보이다. 공주가 되기 전까지 거친 삶을 산다. 무술을 배우고 전쟁터에 나가 활을 쏘는 인물이다."

그는 무대 위에서 처음으로 몸싸움을 한다. "새로운 도전이어서 즐겁다. 육척봉(과거 영국 농민들의 무기)을 배우는 것도 너무 재미있다."

김소향은 2001년 뮤지컬 '가스펠'로 데뷔했다. 스스로 2005년 '아이다'를 통해 뮤지컬 배우로 한 단계 도약했다고 생각한다. 김소향은 아이다에서 앙상블과 주인공인 아이다의 커버를 맡았다. 커버는 주연 배우가 공연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됐을 때 대신 연기하는 사람을 뜻한다. 당시 주인공 아이다는 더블 캐스트(문혜영ㆍ옥주현)였다. 아이다를 맡은 두 배우가 모두 무대에 오르지 못할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김소향은 커버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다른 앙상블 배우들이 휴식을 취할 때 그는 무대 옆에서 주연 배우들이 하는 공연을 지켜보고 메모했다. 그런 열정이 제작사였던 신시컴퍼니의 박명성 대표(56) 눈에 띄었다. 김소향은 아이다 역할로 열한 차례 무대에 올랐다. 박 대표는 "더블 캐스트에서 커버가 무대에 서는 일은 흔치 않다. 엄청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고 했다.

김소향은 자신의 열정의 비결을 뮤지컬에 대한 사랑과 지치지 않는 체력을 꼽았다. 유치원 대신 YMCA 아기 스포츠 단에서 유도, 태권도, 수영, 기계체조 등을 배운 것이 현재 체력의 바탕이다. 안양예고 연극영화과를 다닐 때는 부전공으로 현대무용을 했다. "사람들이 체력만 보면 남자라고 한다. 박지향이라는 별명도 있다. 박지성에 김소향의 이름을 합친 것이다."

그는 국내 배우 중에서 드물게 전미배우조합(AEA) 소속이기도 하다. 2010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2013년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미스 사이공'에 출연했다. 기회가 되면 다시 브로드웨이 무대에 도전할 생각이다.

"동양인이 할 수 있는 공연이 뻔하다. '미스 사이공' '왕과 나' 외에는 없다고 보면 된다. 동양인이 한다고 생각할 수 없는 역할을 할 기회가 왔을 때 도전할 것이다."

국내 무대에서는 계속 창작 초연 무대에 도전할 생각이다. 그는 마리 퀴리처럼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일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김소향과 인터뷰는 지난 14일 있었다. 오전 10시부터 엑스칼리버 연습과 촬영 일정이 있었기에 인터뷰는 오후 늦은 시간에 이뤄졌다. 인터뷰가 끝난 시간은 오후 9시20분이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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