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언제 한번 보자/김언

삼월에는 사월이 되어 가는 사람. 사월에는 오월이 되어 가는 사람. 그러다가 유월을 맞이해서는 칠월까지 기다리는 사람. 팔월까지 내다보는 사람. 구월에도 시월에도 아직 오지 않은 십일월에도 매번 기다리다가 지나가는 사람. 우리가 언제 만날까? 이걸 기약하느라 한 해를 다 보내고서도 아직 남아 있는 한 달이 길다. 몹시도 길고 약속이 많다. 우리가 언제 만날까? 기다리는 사람은 계속 기다리고 지나가는 사람은 계속 지나간다. 해 넘어가기 전에 보자던 그 말을 해 넘어가고 나서 다시 본다. 날 따뜻해지면 보자고 한다.

■예전에 어떤 친구가 정말이지 오랜만에 전화를 한 적이 있었는데, 불쑥 전화를 해서는 하는 말이라곤 '그냥 보고 싶어서'가 다였다. 나는 바쁘기도 하고 그래서 다음에 한번 만나자고 말하곤 전화를 곧 끊었다. 그런데 그러곤 괜히 종일 찜찜하고 울적하고 그랬다. '그냥'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사전을 찾아보면 '그냥'은 "아무런 대가나 조건 또는 의미 따위가 없이"를 뜻한다. 물론 그날 친구가 내게 전화한 까닭은 '대가나 조건'과는 전혀 무관할 것이다. '아무 이유나 별 뜻 없이' 정도가 맞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보고 싶은 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는가. '그냥'은 오롯이 무작정인 것이고 속수무책인 것이다. 누군가가 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일단 '그냥' 보고 싶다고 전화를 하자. 딴 생각은 말고.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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