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민선임기자
[아시아경제 백종민 선임기자] 북ㆍ러 정상회담 직전 북한의 대미 협상 총책임자인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교체가 확인됨에 따라 향후 북ㆍ미 대화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예상된다. 2차례나 미국을 방문한 김 부위원장의 교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해 러시아로 출발한 날 알려졌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심장하다는 분석이다.
김 위원장이 미국과의 대화 의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번 조치는 김 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만남을 경계하는 미국을 향해 대화 재개를 시사하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김 부위원장 교체는 애시당초 미국이 원했던 사안이다. 미국은 군부 쪽에 치우친 김 부위원장이 협상 상대로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여러 번 내놓았다. 지난해 11월 예정됐던 북ㆍ미 고위급 회담이 취소된 것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이 자신의 카운터파트인 김 부위원장을 리용호 외무상으로 교체해줄 것을 북측에 요구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파다했다.
하노이 2차 북ㆍ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에도 지난 9일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 참석해 건재함을 과시했던 그가 통일전선부장 자리에서 물러난 것은 북ㆍ러 정상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미국을 의식한 조치일 수 있다.
이에 따라 북ㆍ미 관계를 현재까지 이끌어온 '스파이 라인' 대신 외무성 중심의 새로운 협상 라인이 꾸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폼페이오 장관은 상원 의원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이 출마한다면 스파이 라인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된다.
워싱턴DC 외교가 안팎에서는 북ㆍ미 협상의 '키맨'이었던 김 부위원장이 통일전선부장직에서 물러남에 따라 북ㆍ미 협상의 북측 무게중심이 기존의 통일전선부 라인에서 외무성 라인으로 옮겨가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리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국무위원에 이름을 올린 것도 새로운 협상판 구성의 일환으로 연계해 볼 수 있다.
특히 최근 김 위원장의 의중을 언론에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던 최 부상의 향후 역할에 이목이 쏠린다. 최 부상은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 특별대표가 등장하며 일선에서 밀린 것 아니냐는 예상이 나온 것을 무색하게 할 만큼 연일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제는 그가 이전의 역할인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의 파트너가 아닌 책임자급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러시아가 이번 북ㆍ러 정상회담을 앞두고 6자회담 재개에 대한 군불 때기에 나선 것도 연계해서 볼 수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24일(현지시간) 6자회담에 대해 "현시점에서 이보다 효과적인 국제적인 메커니즘은 없다"고 말했다. 6자회담이 부활할 경우 최 부상이 6자회담 대표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최 부상이 맡은 외무성 제1부상은 과거 6자회담 북측 대표였던 김계관의 자리였다. 과거 대미 비난에 앞장섰던 김 전 부상은 최근 최 부상에게 자리를 물려줬다.
향후 북ㆍ미 대화의 성사 가능성도 한층 커진 것으로 풀이된다. 강경파인 김 부위원장이 협상 테이블에서 빠진다는 것은 북한이 미국이 주장하는 일괄타결식 비핵화 논의에 조금은 가까워진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김 부위원장을 비롯한 북한의 강경파들이 원하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북한이 핵 프로그램의 일부만 포기하고 미국의 대북 제재 핵심 부분을 해제한 상태에서 북한이 계속 핵무기 보유국으로 남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김 위원장이 이번 방러에 김 부위원장을 포함시키지 않은 것이나 김 부위원장이 맡던 통일전선부장직을 다른 간부에게 넘겨 김 부위원장에 대한 의존도를 현저하게 낮춘 것은 북ㆍ미 비핵화 협상에 매우 긍정적인 신호"라고 말했다.
백종민 선임기자 cinqange@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