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 위대한 발견과 지척(咫尺)의 아이러니

[아시아경제 임철영 기자] 인류가 최초로 블랙홀을 눈으로 확인했다. 1915년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을 발전시킨 일반상대성이론으로 블랙홀의 존재를 예측했고, 인류는 약 104년 만에 그 존재를 영상에 담았다.

인류가 이번에 확인한 것은 정확하게는 블랙홀의 그림자다. 가시광선 등 빛까지 빨아들이는 강력한 중력 탓에 블랙홀 인근, 이른바 '사건의 지평선'을 지나는 굴절된 빛의 군집을 전 세계 최고의 망원경 8대를 동원해 얻어낸 영상으로 암흑의 존재를 확인한 것이다. 판화의 기법으로 치면 '음각'인 셈이다. 시속 30만㎞로 5500만년을 가야 닿을 수 있는 블랙홀은 그렇게 그림자를 통해 존재를 드러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지지하는 이 발견으로 물리학계는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인류는 우주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게 됐다. 나아가 인류는 질량을 가진 물체와 시공간의 보다 깊숙한 상호 관계, 나아가 우주를 이루는 최소 단위를 '끈'이라고 전제한 '초끈 이론'을 증명할 단서를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

"내 인생의 가장 행복했던 생각."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의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1907년을 이렇게 회상했다. 정작 자신은 '질량을 가진 물체로 인한 시공간의 변화'를 추정한 일반상대성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지 못했지만,그리고 가장 행복했던 생각의 구체적 실체를 후대에 선물했다.

그 가운데 대한민국은 안타깝게도 때아닌 '타오르는 태양' 버닝썬 탓에 혼돈에 빠져있다. 단순 폭력사건으로 시작해 마약, 성폭력, 횡령, 수사기관 유착 의혹으로 일파만파다. 연이어 유명 연예인과 유력자들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여기에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폭력ㆍ성접대 사건, 수많은 고위층 인사가 얽힌 고(故) 장자연씨 사건까지 더해졌다.

확인 가능한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고 최대 규모의 공권력이 작동하고 있지만 수사는 더디기만 하다. 최후의 증언이 계속되고 있는 10년 전 사건은 여러 이유로 의혹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납득하기 어려운 검찰과 경찰의 수사 행보 그리고 사법농단으로 개혁 대상이 된 사법부의 침묵으로 시계(視界)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아이러니다. 인류는 지구 직경만한 망원경을 구축해 체감하기 어려운 거리, 지구로부터 5500만광년 떨어진 미지의 블랙홀까지 눈으로 확인했으나 정작 지척(咫尺)에 있는 '아무개의 가장 불행했던 순간'의 그림자 앞에서 헤매고 있다. 지구만한(?) 현미경까지는 필요치 않아 보이는데 말이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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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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