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태우고 달리는 '고요한 택시' 타보니

T맵택시에 '청각장애인 기사님 운영 택시' 선택 가능…꼭 필요한 소통만해 상호배려

카카오의 카풀사업 진출에 반대하는 전국 택시업계 종사자들이 24시간 운행중단에 나선 18일 서울역 택시승차장에 택시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작년부터 택시업계를 둘러싼 신경전이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 승차공유(카풀)가 지핀 불씨는 카풀 산업 전반으로 옮겨붙었고, 택시파업과 택시비인상 등에 대한 승객들의 반응은 더 냉담해지고 있다. 고성, 욕설, 난폭운전 승차거부 등에 대한 민원도 끊이질 않고 있다.

이런 와중에 청각장애인의 자활을 돕는다는 선한 의도로 시작된 SK텔레콤과 사회적 기업 '코액터스'가 운영 중인 고요한 택시는 어떻게 운행되고 있을까? 착한 ICT를 표방한 의도와 상관없이 바쁜 일상 속에 택시를 타야하는 승객들에게 '청각장애인 택시 운전 기사'는 낯설다. 고성ㆍ욕설ㆍ말걸기 같은 불편은 없겠지만, 장애인이 운전하는 택시다보니 안전운전이나 원활한 소통이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11일 오후 6시 퇴근길. 서울 중구 을지로2가에서 고요한 택시를 직접 타보기로 했다. 티맵택시를 실행하고 목적지 서울고를 입력했다. 배차를 누르자 화면 상단에 '고요한 택시가 배차되었습니다. 청각장애인 기사님이 운행하는 택시입니다'라는 문구가 떴다. 호출은 무작위다. 승객들은 이 문구를 보고 청각장애인 기사의 택시를 탈지 말지 선택할 수 있다.

호출을 택했다. 뒷좌석에 앉자마자 조수석 뒷면(뒷좌석 앞)에 부착된 태블릿PC가 눈에 띄었다. 메인 화면 하단에 '기사님께 말하기'와 '여기서 내릴게요' 두가지 배너가 있었다. 길을 잘 못찾거나 답답하면, 여기서 내릴게요를 누르고 바로 하차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택시 기사는 스마트폰 노트에 '서울고 가세요?'라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운전 기사는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아 오케이 사인을 하고 택시를 몰았다.

◆ 정적 속에서 꼭 필요한 의사소통만 = 차내에는 정적만이 흘렀다. 한국은행 사거리를 지날 때 쯤 답답해서 조수석 창문을 열고 싶었다. '기사님께 말하기'를 눌렀다. 음성, 손, 키보드 세가지 방식으로 전달이 가능하다. 음성을 택했다. '앞 창문 좀 열어주세요'라고 조금 큰 소리를 내서 말했다. 글자가 인식 돼 '음성을 전달하겠습니까?'라는 글귀가 나왔다. 확인을 눌렀다. 운전기사는 다시 한번 오케이 사인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수석 창문이 열렸다. 써 본 결과 음성·손·키보드 중에 음성이 제일 편했다. 택시 안에서 하는 의사소통은 '창문을 열어달라', '히터를 꺼달라', '좌회전 해달라'와 같이 정해져있는 짧은 말이다. 음성이 쉽고 인식이 빨랐다.

6시 11분. 고요함은 유지됐다. 급제동이나 급발진도 없었다. 운전기사는 남산 3호터널에 진입할 때에 터널을 손가락으로 가리리키며 문을 닫았다. 터널이어서 창문 닫아야 겠다는 의미다. 고개를 끄덕였다. 터널을 통과하자 운전기사는 다시 창문을 열어줬다. 반포대교에서 차가 막혀 잠시 정차하자, 택시 기사는 '비가와서 차에 냄새가 나지 않아요?' 와 같은 글도 스마트폰 노트에 적어서 보여줬다. 고개를 가로저으니 다시 '오케이' 사인을 했다. 말로 소통을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운전기사와 승객이 침묵 속에서 서로를 배려하는 느낌이었다.

◆ 과속 운전 없이 편안한 운행 = 6시 20분. 반포대교를 지날 때 쯤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15분여의 통화를 마음 편히 할 수 있었다. 누가 통화를 엿듣는다는 느낌이 없어서다. 40여분의 주행 동안 끼어들기나 과속운전은 없었다. 청각장애인은 방어운전이 습관이 되어있고, 듣지 못하는 대신 운전 시야도 넓다. 사고율은 0.01%에 불과하다. 하지만 경적소리나 사이렌은 40데시벨 이상이여서 들을 수 있다.

6시 46분. 서울고 사거리 근처에 진입을 하자, 태블릿 PC화면에 직진, 좌회전, 우회전, 유턴, 목적지 도착 등 골목길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화면이 떴다. 원하시는 방향을 선택해달라는 문구도 같이 나왔다. 아파트 정문이 보여 '목적지 도착' 버튼을 눌렀다. 택시 기사가 차를 정차했다. 태블릿에는 '카드'와 '현금' 중에서 결제 방식을 선택하게 하는 화면도 떴다. 결제를 마치고, 다시 태블릿PC를 통해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운전기사가 환하게 웃었다.

이 택시를 운전한 이대호(52)씨는 2급 청각 장애인이다. 서울에 청각 장애인이 모는 택시는 모두 2대로 지난해 8월부터 운행을 시작했다. 이 씨는 "승객들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지만, 마음은 들을 수 있다"고 전했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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