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22주' 낙태 결정 가능 기간의 딜레마

66년만의 낙태죄 헌법 불합치

헌재, 태아 독립 생존 시점
임신부 자기 결정권 행사 충분
입법 절차 거치며 경계 명확히

의료계, 주수 한정 위험 지적
'임신 알고 난 이후' 등으로 바꿔야

낙태죄 위헌판결이 난 11일 서울 헌법재판소 앞에서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기쁨의 포옹을 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정동훈 기자, 이설 기자] 낙태를 허용하는 주요 국가뿐 아니라 국내 의료계에서도 '낙태 가능 임신주수'를 12주 내외로 추천한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11일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그 기간을 '임신 22주'로 명시했다. 향후 국회 입법 논의 과정에서 정확히 정해질 것이지만, 헌재가 낙태 허용범위를 폭넓게 인정해준 것인지 혹은 그 반대인지 따져볼 필요가 생겼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22주 언급 이유에 대해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이라며 "동시에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는 지금도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낙태 가능 기간 24주보다 더 엄격한 기준이다. 헌재가 23주 이상 되는 태아의 경우는 어떤 이유에서도 낙태를 허용할 수 없다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이는 의료기술의 발전과 관련 있다.

1973년 24주 제한적 허용 기준이 정해졌을 때보다 현재 의료기술은 더 적은 임신 주수에서 태아를 생존시킬 수 있게 했다. 통상적으로 임신 5~6주 사이에는 초음파를 통해 태아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으며 임신 9주부터 태아가 사람의 형체를 잡고 10주부터는 장기가 성숙 단계에 들어선다. 현행 모자보건법이 허용하는 임신 최대 주수인 24주가 되면 태아 몸무게는 약 900g~1㎏까지 성장하며 밤과 낮을 구별할 수 있을 정도다. 헌재는 이런 의료적 정보를 감안하며 24주를 22주로 낮출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낙태죄 위헌의견을 낸 재판관 3명은 "마지막 생리기간의 첫날부터 14주 이내는 전면 허용"을 주문했다. 이에 따라 국회는 여러 사회적 논의 과정을 거쳐 의료계에서 제시하는 12주와 헌재 의견인 14주 근방까지는 여성 본인 판단에 따른 낙태 전면 허용을, 12~14주를 넘어 22주까지는 조건부 허용으로 의견을 모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조건부 허용의 내용을 정하는 것도 중대한 과제다. 모자보건법은 본인ㆍ배우자의 유전적 질환이나 강간 등에 의한 임신, 임부의 건강이 크게 위협 받는 경우 2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국회는 이 기간을 22주로 줄이고 '조건'을 추가하거나 보다 명확히 하는 방식으로 법을 개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이 낙태죄 헌법 위헌 여부를 판결하기 위해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으로 들어서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한편 의료계에선 낙태 허용 주수를 한정적으로 규정하는 것에 대한 위험성도 지적하고 있다. 뒤늦게 임신 사실을 알거나 허용 주수를 넘긴 후 중증기형이나 의학적으로 생존 불가능한 태아를 발견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김동석 산부인과의사회장은 "22주가 넘은 뒤 아기에게 심각한 기형이나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이 생기면 예외적으로 수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산부인과 의사도 "임신 사실을 알고 난 후 2주 이내, 한 달 이내 이런 방식의 허용 주수를 가능하게 정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을 냈다.

주수 외에도 보완해야 할 과제가 많다. 낙태 절차와 방법 등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숙려기간과 상담제도를 통해 임부로 하여금 낙태의 의미ㆍ과정ㆍ결과 및 그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하게 해줘야 하며, 안전한 환경에서 시술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법 등이다. 또 임신과 출산에 대한 남성의 책임도 법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한편 이번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현재 낙태죄 위반으로 수사ㆍ재판을 받고 있는 이들은 무죄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헌법불합치는 헌법재판소법상에는 적시돼 있지 않지만 위헌 결정으로 받아들여 헌재가 제시한 기한까지 판단을 보류하거나 피고인들에게 공소기각에 따른 무죄를 선고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재심을 청구할 경우 2012년 헌재가 낙태죄를 합헌 판결한 이후부터 할지, 법이 제정된 1953년으로 할지에 대해선 법조계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이설 기자 sseol@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사회부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사회부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사회부 이설 기자 sseol@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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