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허들링'이 필요한 사회

봄이 온다. 예전에는 봄꽃도 차례로 피더니 이제는 봄꽃도 한꺼번에 순서 없어 서둘러 핀다. 봄은 왔는가 하고 느끼면 곧바로 여름으로 넘어간다. 누군가는 그런다. 이제 우리 한반도에는 봄과 가을이 없고 여름과 겨울만 있을 뿐이라고. 그럴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에 아직도 봄이 왔다는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북ㆍ미 관계도 봄이 오는가 하더니 다시 겨울로 돌아갔다. 우리의 정치나 경제는 아직도 겨울이다.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며 살고 있는 우리 사회는 더욱 더 그러하다. 냉랭하기만 하다. 보궐선거하는 선거판이 사전 투표가 어느 때보다도 높은 것은 그래도 정치가 무엇인가를 해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하루도 평화가 없는 우리 사회. 들쑤시기만 하면 터져 나오는 스캔들.

이른바 버닝썬 게이트라 불리는 경찰과 연예계의 유착, 연예인들의 윤리의식 없는 행동 등 이 모든 사건들이 터져 나오는 것은 생존 문제가 아니라 지나친 욕망 때문이며 비뚤어진 마음들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나의 쾌락만이 중요하지 남의 피해는 나몰라라하기 때문이다. 남에 대한 배려는 없다. 그들이 야합하는 것은 은폐를 위한 것이지 같이 살기 위한 행동은 아니다. 극한 상황에서 살아 남기 위해 그런다면 다소 이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 사랑이라는 단어조차도 잊고 살기 때문에 저질러진 행태다.

인간사랑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배려, 그리고 나아가서는 구원의식에서 출발해 그것으로 달성된다. 나는 문학에 대한 담론이나 강의를 할 때마다 문학은 인간 이해로 시작해서 사랑과 구원으로 끝을 내야 한다고 역설하곤 한다. 그러나 진솔하게 토로하건대 나조차도 인간사랑에 대한 마음이 존재하고 있는가를 때때로 회의하곤 한다.

남극에 사는 펭귄은 영하 50도 속 혹한의 눈보라 속에서도 얼어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생존법, '허들링(huddling)'으로 이겨낸다고 한다. 영상을 통해 여러 번 봤지만 펭귄들은 본능적으로 서식지에서 모여 살면서 혹한이 몰아치면, 무리로 몸들을 붙이고 대오를 흩뜨리지 않고 원을 그리며 같이 돌면서 바깥쪽과 안쪽에 있는 펭귄들이 순번대로 자리를 교대하며 쉬지 않고 움직여 서로 추위를 막아준다고 한다. 그들은 같이 생존을 위해 밖에 서서 추위를 막아주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는 서로에 대한 배려이다. 이들에게는 이기심이라는 것이 없다. 생존 위험의 상황에서도. 물론 이는 동물적 본능에서 나오는 행위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도 이러한 처지에 처했을 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망설임 없이 그렇게 할 것이라고 선뜻 대답할 수 없다. 남 탓으로 돌리는 우리들.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남을 밟고 넘어가는 우리들. 물론 공동체 의식이 강한 집단이나 회원들은 그렇게 할 것이라고 대답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자칫 집단이기주의의 소산일 수 있음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어려운 시대일수록 우리는 펭귄의 허들링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진정한 봄이 온다. 그래야 그 봄이 오랫동안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찬란하고 아름다운 봄이.

유한근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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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편집부 공수민 기자 hyunhj@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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