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이야기] 봉급생활자의 절세권을 보장하라

1994년 개봉된 영화 ‘쇼생크 탈출’은 단순히 억울한 죄목으로 갇힌 주인공의 교도소 탈출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사람이 죽은 뒤에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세금 이야기가 녹아 있다. 영화에서 주인공 앤디 듀프레인은 악명 높은 교도관들의 소득세 연말정산을 도와준다.

그는 교도관들이 가져온 증빙을 세법 기준에 맞추어줘 절세하도록 하고, 대신 다른 죄수들로부터 신변을 보호받는다. 교도소 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교도관들조차도 세금고지서 앞에서는 순한 곰에 불과했던 것이다.

다들 알다시피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 소득은 (수입금액 ― 필요경비)에 따라 산출된다. 그런데 근로소득 금액산출은 너무 단순하다. 근로수입금액에서 정부가 정한 비용(근로수입금액에 일정한 비율을 곱하여 산출한 근로소득공제액)에다가 신용카드 소득공제처럼 극히 예외적인 금액만을 빼준다. 이러다 보니 근로소득자의 절세권이란 사실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연말정산을 할 때마다 신용카드와 직불카드 및 현금영수증 등의 사용실적을 요리조리 맞추며 세금을 줄여보려고 안간 힘을 쓰지만, 기껏해야 절세금액은 1인당 평균 80만원 이내다.

미국이나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는 ① 우리나라처럼 정부가 정하는 금액을 일률적으로 빼주든지 아니면 ② 근로수입을 얻기 위해 지출한 금액(예를 들면, 출퇴근비, 식비, 교육비 등)을 빼주는 방법 중 본인에게 유리한 방법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봉급생활자의 절세권을 실제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교도관들은 후자를 이용해 소득세를 절세했다.

최근 과세관청은 올해도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의 폐지 또는 축소를 검토했었다. 지하경제 양성화 목표가 달성되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시중에서는 아직도 현금으로 지불하면 값을 깎아주겠다는 사업자가 수두룩하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신용카드 소득공제금액의 축소를 매년 반복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봉급생활자들의 자존심과 절세권을 무시하는 처사다.

신용카드 소득공제 폐지 주장은 토사구팽(兎死狗烹)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토끼(지하경제 양성화)를 잡았으니(사실 명확하게 다 잡은 것도 아니지만), 이제는 토끼를 잡은 사냥개(신용카드 소득공제)를 버리겠다는 심산이다.

최근 2013년과 2017년을 비교하면 전체 세수입에서 근로소득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11.82%에서 13.71%로 증가했으나, 법인세는 같은 기간 23.05%에서 제자리걸음하였다(국세통계연보). 그만큼 봉급생활자가 봉이라는 의미다.

신용카드 소득공제 폐지를 주장하기에 앞서, 선진국들이 시행하는 대로 실제 발생경비를 공제하는 등 봉급생활자들의 절세 선택지를 넓혀주는 것이 필요하다.

세금은 인간의 모든 지각에 앞서 존재하는 선험적(a priori) 제도가 아니다. 계약에 따라 국가를 이뤄 생활하며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경험적(a posteriori) 제도일 따름이다. 따라서 세금제도는 시대와 형편에 따라 다양하게 존재하는 것이며, 봉급생활자의 절세권도 이 범주에 있다.

세금에 대한 불만은 조세저항으로 이어진다. 장기화한 프랑스 노란조끼 시위의 발단도 세금 문제였다. 우리도 지난 2014년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슬그머니 제도를 변경해, ‘거위에서 고통 없이 깃털 뽑으려다가’ 조세저항이 일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부랴부랴 근로소득 세액공제액 확대 등 무마책을 제시했었다. 이토록 조세저항은 무서운 법이다.

이 교훈을 벌써 잊었다면 실망을 넘어 무지 또는 무능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안창남 강남대학교 경제세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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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편집부 공수민 기자 hyunhj@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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