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장맛비가 내리던 저녁/이상국

비가 오면

짐승들은 집에서

우두커니 세상을 바라보고

공사판 인부들도 집으로 간다

그것은 지구가 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비가 오면

마당의 빨래를 걷고

어머니를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고

강을 건너던 날 낯선 마을의 불빛과

모르는 사람들의 수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비는 안 가 본 데가 없다

빗소리에 더러 소식을 전하던 그대는

어디서 세상을 건너는지

비가 온다

비가 오면 낡은 집 어디에선가

물 새는 소리를 들으며

나의 시도 그만 쉬어야 한다

■당신 떠나고 당신이 생각날 때마다 서성였습니다. 목련 아래를 서성였습니다. 골목길을 서성였습니다. 아침에도 서성이고 가끔은 새벽에도 서성였습니다. 한동안은 퇴근을 하다가도 괜히 좀 먼 데로 둘러 가곤 했습니다. 당신과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곳을 서성이기도 했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종점이었던 적도 두어 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당신은 없었습니다. 야속했습니다. 미웠습니다.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몇 번은 울었습니다. 그렇게 지냈습니다. 당신을 원망하면서 꼭 그만큼 그리워하면서. 그런데, 몰랐습니다. 정말 몰랐습니다. 그 모든 곳에 당신이 있었다는 것을, 제가 서성일 때마다 당신도 함께 서성였다는 것을. 저 "안 가 본 데" 없는 비처럼 당신은 제 모든 곳에 이미 있었습니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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