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총대란 우려 속에서도 '전자투표제' 외면하는 상장사

대기업 '소액주주들 반란'

중기 '낮은 효율성' 우려 여전

올해도 주총대란 오나

[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오주연 기자] 코스닥 상장사인 바이오업체 A사는 전자투표제 도입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다. 주주들의 전자투표 참여율이 저조한 상황에서 비용 및 인력이 부족한 코스닥 기업 여건상 자원 투입에 비해 효율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은 물론 오히려 업무가 가중된다는 이유에서다. 2017년 전자투표제를 도입했던 A사는 이번 주총에서 전자투표제 포기를 고려하고 있다.

주주총회 시즌이 다가오면서 코스피, 코스닥 상장사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섀도보팅제도' 폐지 이후 첫 번째 주총이었던 지난해 70개가 넘는 상장사의 주총이 무산되는 '주총대란'의 홍역을 치뤘지만, 정부가 해결책으로 제시한 전자투표제는 유명무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12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코스피와 코스닥 등 전체 2111개 상장사 중 전자투표제를 도입한 곳은 지난해 12월 말 기준 1204개사(57.03%)로 절반을 넘는 수준에 그쳤다. 전자투표제란 주주가 주주총회에 참석하지 않아도 온라인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소액주주의 참여를 제고하기 위해 2010년부터 시행돼 벌써 9년째다.

시장별로 보면 코스피 상장사들의 전자투표 도입률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코스피 시장 전체 788개사 중 전자투표를 도입한 곳은 359개사로 46%에 불과했다. 코스닥 상장사 1323개사 중 845개사가 전자투표를 도입해 64%를 차지한 것과 비교하면 20%포인트 가까이 차이가 난다. 특히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기업들의 도입률이 현저히 낮았다. 지난해 말 기준 코스피 시가총액 100위내 기업 중 전자투표를 도입한 곳은 21곳에 불과했다. 2017년 말 16곳에서 1년 동안 신규 도입한 곳은 단 5개사뿐이었다.

전자투표 도입 신규 건수도 매년 줄어들고 있다. 코스피, 코스닥, 코넥스 등의 상장사 전자투표제 도입 신규 건수는 2015년 459건에서 2016년 337건으로 줄었다가 2017년 381건으로 소폭 늘었지만 지난해에는 단 106건에 그쳤다. 2017년 증가 이유도 전자투표제 도입 시 섀도보팅제 한시적 허용 때문이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상장회사들의 전자투표 도입 목적은 주주의 의결권 행사 편의 지원보다 의결 정족수 확보를 위한 목적이 더 강하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전자투표제를 도입했다고 해도 실제 행사하는 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24%에 불과했다.

상장사들의 전자투표제 도입이 저조한 배경과 관련해 대기업의 경우 일명 '소액주주들의 반란'을 우려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가가 부진할 경우 반대표가 많이 나와 주총 안건의 통과가 어럽게 되기 때문이다. 요즘과 같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한 상황에서 개인주주들이 의견을 모아 집단행동에 나설 수도 있다. 주주친화정책이 부각된 최근에서야 SK, 한화, GS, 신세계 등 재벌그룹들도 전자투표제 도입 행렬에 동참했지만 주총 안건 부결 등 제도 악용에 대한 우려가 여전하다. 한진그룹은 KCGI의 '전자투표제를 도입하라'는 주주제안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인력과 자본이 부족한 코스닥 중소기업들은 전자투표제의 실효성을 의심하고 있다. 자본금에 따라 100만~500만원이 부과되는 전자투표 도입 비용에 비해 효과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B업체의 경우 2017년 전자투표제를 시행했을 때 참여율은 전체 의결권있는 주식수의 0.48%에 불과했다. 오히려 수천만원 이상의 비용이 드는 위임장대행업체를 이용하겠다는 곳도 있었다. C업체는 "전자투표가 주주의 참여 기회를 넓혀준다고는 하지만 종목에 대한 장기보유자가 많지 않은 코스닥 특성에는 맞이 않다"면서 "인력 또한 부족해 소액주주를 직접 찾아갈수도 없어서 차라리 돈이 더 들더라도 위임장 대행업체를 이용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상장사협의회는 올해 주총에서 보통결의 요건(발행주식 총수의 25% 이상 찬성)에 미달하는 상장사가 7곳 중 한 개꼴인 271개(14.0%)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주총 부결 회사(76개)의 네 배에 가까운 수치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자투표 제도가 도입되면 주주들의 주주권 행사가 용이해지기 때문에 경영진 입장에서 이런 부분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면서 "아직은 본격적인 시작 혹은 정착돼 있다고 보기에는 시기상조로 주주들에게 전자투표 행사 방법 내지는 행사 전략에 대해 합의되는 기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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