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 與 재판불복, 두 개의 그림자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사법농단 세력의 보복성 재판이다." 김경수 경남도지사 '법정 구속' 사태에 대한 여당의 초기 대응은 복기가 필요한 사안이다.

여당은 격앙된 정서를 가감 없이 노출했다.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진 재판 당일(1월30일)은 물론이고 다음 날 여당 지도부 회의 때도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양승태 적폐 사단이 조직적인 저항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개혁에 맞서려는 적폐세력의 저항은 국민의 힘에 제압될 것이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정치적인 효과는 얻었다.

덕분에 여당은 분노의 물줄기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담당 재판장인 성창호 부장판사 사퇴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20만명을 돌파했다. 주말 대법원 앞에는 수천 명의 시민이 모여 재판부를 성토했다. 이런 모습을 보며 흡족한 표정을 짓는 여당 의원이 있다면 정무적인 감각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재판불복' 프레임은 여당에 부메랑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드루킹 일당과 공모해 댓글 조작에 가담한 혐의로 1심서 징역 2년 실형을 선고 받은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1월3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법정을 나선 뒤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특히 사법개혁 당위성을 갉아먹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은 뼈아픈 대목이다. 여당이 사법부를 향해 개혁의 칼날을 들이댈수록 정치적인 의도와 관련한 의혹의 시선도 커진다는 얘기다. 사법부의 진짜 적폐 세력들이 여당의 섣부른 대응 때문에 활로를 찾게 되는 역설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보복성 재판'이라고 주장하기는 쉽지만 이를 입증하기는 어렵다. 여당은 이른바 '스모킹 건'을 확보한 상황에서 초강경 대응을 한 것인지 되돌아봐야 한다. 성 부장판사가 김 지사 선고를 앞두고 기일을 연기한 것에 의혹의 시선을 보낼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정도를 갖고 보복성 재판을 입증할 확실한 증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여당이 뚜렷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보복성 재판이라는 주장은 사법부를 겁박(劫迫)한 행위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여당이 궁지에 몰렸다고 사법부가 뒤에서 웃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김 지사 판결은 판사 성향에 따라 재판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의구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됐다. 이미 시작된 '사법부 불신의 시대'는 법관들에게 물음을 던지고 있다.

정녕 당신들을 믿어도 되느냐고….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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