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졸다 깨는 시장/정채원

물고기를 사러 야채시장으로 갔다. 썩은 배추 껍데기가 산더미처럼 쌓인 울타리를 벗어나자 물고기를 파는 좌판이 보였다. 그러나 물고기는 거의 다 검은 아가미에 검붉은 눈동자. 아주머니들은 썩어 가는 표정을 간신히 추스르고 있었다. 어떤 이는 쉬지 않고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등 뒤에서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는데 계속 부채질을 하는 사람들, 그래도 쉬지 않고 썩어 가고 있었다. 썩어 가는 눈을 끔벅이고 있었다. 썩어 가는 아가미로 찢어지게 하품을 날리는 사람들 지나간다. 아주머니들은 졸다 깬 듯 소리를 질러 댄다. 떨이예요 떨이, 이거 다 만 원에 가져가요. 다 가져가요. 하나도 남김없이, 슬픈 표정의 물고기들. 썩어 가도록 아무에게도 팔려 나가지 못한 자들의 지루한 기다림이 바람이 불 때마다 썩은 내를 풍기고 있었다. 멀리서 누군가 싱싱한 야채를 차에 가득 싣고 있었다. 곧 발효 식품이 될 푸른 잎들, 바람이 썩히기 전에 스스로 썩어 향기를 잃지 않으려는 것들. 푸릇푸릇한 손을 흔들어 대고 있었다, 너나 나나 썩는 건 모두 시간문제라는 듯.
■누구나 태어나 살다가 늙거나 병들어 죽는다. 예외는 없다. 태어남은 시작이고 죽음은 끝이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도 생각한다. 어쩌면 삶과 죽음은 동시적인 사태가 아닐까라고 말이다. 달리 말해 태어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죽음을 향해 "쉬지 않고 썩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 죽음은 삶의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내재한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 시의 본의는 "썩어 가도록 아무에게도 팔려 나가지 못한 자들의 지루한 기다림"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너나 나나 썩는 건 모두 시간문제"다. 그러니 비록 "떨이" 같은 인생이더라도 슬퍼하지 마라. 정작 중요한 사실은 "썩어 향기를 잃지 않"는 것, 곧 얼마나 "푸릇푸릇"하게 잘 "발효"되느냐에 있는 것이니. 채상우 시인<ⓒ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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