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노래의 눈썹/장옥관

새의 발가락보다 더 가난한 게 어디 있으랴 지푸라기보다 더 가는 발가락,햇살 움켜쥐고 나뭇가지에 얹혀 있다나무의 눈썹이 되어 나무의 얼굴을 완성하고 있다 노래의 눈썹, 노래로 완성하는 새의 있음배고픈 오후,허기 속으로 새는 날아가고 가난하여 맑아지는 하늘가는 발가락 감추고 날아간 새의 자취, 쫓으며 내 눈동자는 새의 메아리로 번져 나간다
■이 시는 이상하게도 읽으면 읽을수록 한껏 가득 채워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왜 그럴까? 그 까닭은 아마도 '가난'이 '햇살', '노래', '하늘', '허기', '자취', '메아리' 등과 연동되면서 불러일으키는 고양된 충만함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가난하여 맑아지는"이라는 구절은 이 시의 기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물론 '가난'은 특히 자본주의적 시스템 하에서 예술이 특화한 오래된 미적 신화이자 그만큼 낡고 보잘것없는 전략적 기제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난'은 또한 그러한 의심과 냉소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의 천박함을 구제할 마지막 성소이기도 하다. 보라! 저 춥고 시린 겨울 저녁, 잎 다 진 나뭇가지에 앉아 오로지 스스로를 완성하고 있는 새의 노래를, 그 오롯한 "있음"을! 그리고 그 사라짐을! 채상우 시인<ⓒ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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