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해결 중요하다'고 했지만…ISD 사전협상 '무용지물'

[아시아경제 문제원 기자] 스위스 승강기 제조사 쉰들러 홀딩 아게가 현대엘리베이터 투자 과정에서 국내 금융당국의 의무 해태로 약 3400억원의 손해를 입었다며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제기했다. 한국 정부는 대응단을 꾸려 세 달 이상 쉰들러 측과 협상 기간을 가졌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오히려 쉰들러 측의 요구액은 같은 기간 약 500억원이 늘어 사전 협상 자체가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법무부에 따르면 쉰들러 측은 한국 정부가 한국·유럽자유무역연합(EFTA) 자유무역협정(FTA) 부속 투자협정에서 정한 공정·공평대우 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가 2013~2015년 경영권 방어를 위해 유상증자와 전환사채 발행을 했음에도 당시 금융감독원은 "신기술 도입 등 경영상 목적"이라는 현대엘리베이터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조사·감독 의무를 해태했다는 취지다. 쉰들러 측이 주장하는 손해액은 최소 3억 달러(약 3400억원)다. 지난 7월 중재의향서 접수 당시 주장했던 2억5900만 스위스프랑(약 2926억원)과 비교하면 약 500억원이 늘었다. 법무부 관계자는 "환율에 따라서 다를 수 있긴 하지만 정확히 어떤 산정 기준에 따라 증가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ISD의 경우 외국 투자자는 중재 청구를 제기하기 최소 90일 이전에 상대 국가 측에 중재의향서를 서면으로 통보해야 한다. 정식 ISD에 앞서 양측이 가급적 협의 기간 동안 평화적으로 갈등을 마무리하라는 취지다. 당초 정부는 이 같은 사전 협상 기간을 ISD 절차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이 론스타로부터 첫 ISD 제소를 당하기 전인 2010년 법무부가 발행한 '국제투자분쟁 가이드'에 따르면 법무부는 "분쟁 발생시 협의나 협상을 통한 조기해결이 가장 중요하다"며 "실제 외국에서도 중재의향서 제출 이후에 투자유치국과 협의해 사건을 조기에 해결한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그러나 이후 8년간 한국이 외국인 투자자로부터 7건의 ISD 피소(총 약 6조8000억원 규모)를 당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사전 협상기간에 사건을 해결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협상 기간을 거친 후 외국인 투자자 측의 요구 손해액은 대부분 증가했다.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경우 지난 4월 중재의향서 접수 때 약 7200억이었던 요구 손해액이 3개월 만에 8600억원 대로 늘었고, 메이슨도 1880억원에서 2240억원 대로 손해액을 높였다. 하지만 법무부는 중재신청서가 접수된 이후까지도 어떤 기준에서 이 같은 금액이 산출됐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법무부 관계자는 "(엘리엇·쉰들러 모두) 손해액 산정 기준을 밝히지 않고 있다"며 "전략 노출 방지 차원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전 협상 단계에서) 기준을 밝힌 적은 없다"고 말했다.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국제통상위원회 부위원장 노주희 변호사는 "형식적으로 실제 중재신청에 돌입하기 앞서서 양 당사자가 만나 오해를 풀고 협상할 수 있도록 하는 설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설명했다.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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