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제주도 이중섭 거리

최근 화가 이중섭의 삶이 화제가 됐다. 한 TV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제주도의 이중섭미술관이 소개되면서다. 그가 제주도에 살았던 기간은 11개월 남짓이었다. 1951년,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때다. 그해 제주도에서 삶은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그가 제주도에 도착한 것은 1951년 1월이었다. 1ㆍ4후퇴로 피란을 떠나야 했던 그는 부산을 거쳐 제주도까지 갔다. 부인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와 두 아들도 함께였다. 비록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전국을 떠도는 생활이었지만 그에게는 희망이 있었다. '길 떠나는 가족'에는 당시 그의 감정이 잘 드러나 있다.

이중섭 '길 떠나는 가족'

제주도에서의 생활은 채 1년이 안 되지만 가족과 함께였기에 그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서귀포의 환상'에는 그가 이 시기 느꼈던 충만한 감정이 잘 표현돼 있다. 그는 제주도 생활에서 생애 최고의 기쁨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서귀포의 아름다운 풍광 또한 그의 예술 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 시기 그가 접한 제주도 바닷가에서 노는 아이들과 게, 물고기 등은 그가 평생 그리며 그리워하는 대상이 됐다.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 '그리운 제주도 풍경'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하지만 심리적인 안정감과 달리 여전히 전쟁은 계속되고 있었고 그의 가족은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 1951년 12월 부산으로 떠날 때까지 제주도에서 그와 가족들은 피란민 보급품과 고구마로 연명했다고 한다. 당시 그의 곤궁함은 그가 남긴 독특한 '은지화'에서 엿볼 수 있다. 그는 담뱃갑 속의 은박지를 철촉필로 눌러 그림을 그렸다.제주도를 떠난 뒤인 1952년 생활고로 고통을 겪던 부인은 결국 두 아들과 함께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는 전쟁 중인 조국의 현실을 외면하지 못하고 한국에 남아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그리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화폭에 담았다. 1952년 작품 '가족'이 대표작이다. 이 그림에서 네 명의 가족은 끌어안듯이 어우러져 있다. 그가 원했던 삶의 모습은 아마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또 그는 우직하지만 역동적인 소의 모습을 그리며 그리움을 달랬다. 하지만 그는 1953년 일본에서 가족들을 마지막으로 만난 뒤 다시 볼 수 없었다.제주도 서귀포매일올레시장 건너편에서 시작해 이중섭미술관까지 이어지는 '이중섭거리', 이 길을 걸으면 새삼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이유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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