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류 관계없이 ‘음료’…시각장애인, ‘골라 마실 권리’ 찾을 수 있을까

다섯개의 캔 음료는 모두 다른 음료(콜라,사이다,커피,이온음료,홍차음료)지만 표기된 점자는 '음료'로 동일하다

[아시아경제 고정호 기자]캔 음료의 뚜껑 부분에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점자가 표기돼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점자가 제품명을 구별해 표기한 것이 아닌 ‘음료’라고만 표기하고 있어 시각장애인들은 점자만으로 상품의 종류가 탄산음료인지 커피인지도 구분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현재 약 25만명으로 집계되는 시각장애인들의 상품 선택권이 제한받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일부터 3일까지 서울여대 대강당 앞 자판기에서 '손 끝으로 읽는 자판기' 캠페인이 진행됐다 / 사진=서울여대 인권프로젝트팀 '훈맹정음' 페이스북

이같은 문제를 알리기 위해 대학가에서는 인권 동아리와 단체를 중심으로 시각장애인들의 불편을 체험할 수 있는 ‘손 끝으로 읽는 자판기’ 캠페인이 진행됐다. 이 캠페인은 자판기의 상품 진열대를 ‘음료’라고만 적힌 캔의 사진으로 모두 가려 비장애인 사용자들이 종이를 들춰 진열대를 보지 않으면 상품 종류를 식별할 수 없도록 했다.해당 캠페인은 서울여자대학교 인권프로젝트팀 훈맹정음이 처음 기획했다. 이들은 11월4일 점자의 날을 맞아 2일부터 10일까지 총 10개의 대학과 함께 ‘손 끝으로 읽는 자판기’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 캠페인에는 2일부터 3일까지 서울여대, 3일 이화여대, 6일부터 10일까지 연세대, 8일 숙명여대와 건국대 등이 참여했다.훈맹정음팀의 유경민(22) 씨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손 끝으로 읽는 자판기’ 캠페인을 기획한 계기에 대해 “장애를 가진 개인을 바꾸는 게 아니라 (장애인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환경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라며 “’비장애인처럼 장애인도 똑같이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학교를 바꿔 나가야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손 끝으로 읽는 자판기' 행사 포스터 / 사진=서울여대 인권프로젝트팀 훈맹정음 페이스북

업체들은 대부분의 상품의 점자 표기를 ‘음료’로만 표기하는 이유로 ‘비용’을 든다. 개별 음료마다 다른 점자를 새기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공정이 필요하고 이에 수반되는 비용이 부담이라는 것이다.하지만 시각장애인의 상품 선택권을 보장하고자 하는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코레일유통은 지난 2015년부터 KTX와 서울지하철 1호선에 설치된 음료 자판기 2400여 대에 구체적인 음료명이 표기된 점자 스티커를 부착했다. 또한 롯데칠성음료는 올해부터 매출 비중이 가장 큰 탄산음료에 ‘탄산’이라고 별도로 표기하기 시작했다.이에 대해 롯데칠성음료 측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비용과 시간 문제로 한번에 점자 표기를 늘리기는 힘들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작은 실천을 위해서 일단 매출 비중이 가장 큰 탄산음료부터라도 ‘탄산’ 표기를 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고정호 jhkho2840@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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