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더 바빠요③]의료인들 “환자들이 가족이죠”

[아시아경제 이승진 기자] “명절에 언제 고향을 찾았는지 기억조차 안나요.”서울아산병원 간이식병동에서 근무하는 강유경(38) 간호사는 이번 추석도 환자들과 함께한다. 올해 17년차 베테랑 간호사인 강 간호사는 명절에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환자, 동료들과 함께 보내는 것에 더 익숙하다. 그는 “3교대 근무를 해야 하는 간호사들에게 명절은 큰 의미가 없다”며 “우리가 아니면 환자는 누가 돌보겠어요”라고 말했다.대부분의 사람들이 쉬면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추석 연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타인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간호사와 의사 등 의료인들은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응급 환자와 입원 환자를 위해 연휴에도 병원을 떠날 수 없다.이번 추석 연휴 열흘 동안에도 전국 535개 병원 응급실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24시간 진료한다. 많은 민간 의료기관이 문을 닫는 추석 당일마저도 보건소 등 336개 공공의료기관은 진료를 쉬지 않는다.
간호사 근무 초기 가족을 못 만난다는 것에 큰 상실감을 느꼈다. 이젠 명절이면 가족보단 환자들을 먼저 떠올린다. 강 간호사는 "명절이 다가오면 ‘병동의 환자는 누가 돌보지’란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고 말했다. 강 간호사는 10년 전 간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던 한 환자가 추석 연휴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고향을 찾았다가 상태가 급격히 악화돼 숨을 거두었던 아픈 추억이 있다. 그 환자는 가족들에게 "강 간호사가 있는 병원에서 임종하고 싶다"고 호소했지만, 결국 구급차 안에서 숨을 거뒀다.당시 그 환자와 아버지와 딸처럼 정말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었기에 강 간호사의 마슴은 찢어지는 듯 아팠다고 한다. 그는 “이미 10년 전 일이지만 추석 때만 되면 당시의 일이 생각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소화기내과 김도훈(46) 교수 역시 당직근무로 인해 병동에서 추석을 보낼 예정이다. 김 교수는 “명절이 되면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은 누구나 다 똑같다”며 “하지만 환자 곁을 지켜야하는 것이 의료인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김 교수는 추석이면 과거 시골 마을에서 공중보건의사 시절이 떠오른다. 추석 당직을 서던 어느 날 할머니 몇 분이 손에 까만 봉투 하나씩 들고 나타났다. 한 분은 나물 반찬을 싸오셨고, 한 분은 하얀 속옷과 양말을 선물했다. 김 교수는 “속옷을 받아 집에서 펼쳐보니 제 사이즈보다 너무 작아 한참 웃었던 기억이 있다”며 “이런 기억들 하나하나가 모여 명절에 일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회상했다. 가족과 떨어져 보내는 추석이지만 나름대로의 장점도 있다. 김 교수와 강 간호사 모두 “환자 한명 한명에 더 집중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김 교수는 “응급실과 중환자실은 평소와 다름없이 진료를 하지만 평소보단 환자가 적어 환자에게 더 집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 간호사는 환자에 집중할 수 있는 장점에 덧붙여 “서울의 경우 도심에 차량이 많이 줄어들어 출퇴근이 편해서 좋다”고 웃으며 말했다.김 교수는 “명절에 당직을 서게 되면 어머니께서 명절음식을 싸서 가져다주신 적이 있다”며 “이 음식을 동료나 환자들과 나눠 먹기도 한다”고 말했다. 강 간호사도 “명절이 되면 일하는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환자들도 고향을 그리워한다”며 “맛있는 음식을 서로 나눠먹거나 덕담을 주고받는 등 추석 분위기를 낸다”고 전했다.명절 음식 냄새 대신 소독약 냄새가 풍기는 병동도 역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 같은 정이 오고 가는 곳이었다. 이승진 기자 promotion2@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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