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 탈(脫)원전

[아시아경제 조영주 기자] 세계 최초로 원자력발전에 성공한 것은 1951년 12월 미국의 원자로 EBR-1였다. 1954년 6월에는 옛 소련에서 세계 첫 원전인 오브닌스크 원전을 가동했고, 2년여 뒤에는 영국의 콜더홀 원전이 상업운전에 성공했다. 머지 않아 한국에도 원자력발전이 소개됐다.1956년 7월 미국 에디슨전력회사 사장을 지낸 워커 시슬러 박사가 우라늄과 석탄을 담은 나무 상자를 들고 이승만 대통령을 찾았다. "우라늄 1g이면 석탄 3t의 에너지를 낸다. 석탄은 땅에서 캐는 에너지이지만 원자력은 사람의 머리에서 캐내는 에너지다. 한국처럼 자원이 적은 나라에서는 사람의 머리에서 캐낼 수 있는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시슬러의 말에 이 대통령은 1959년 원자력원을 발족하고, 미국 원자력 훈련기관에 학생 273명을 보냈다.한국의 원전 산업은 1977년 6월 고리 1호기를 완공한 이래 급속도로 성장했다. 당시 세계 21번째 원전을 둔 국가였지만 40년 만에 세계 4위 원자력 발전국으로 부상했다. 고리, 월성, 영광, 울진 등 4개 부지에 22기 원자로를 두고 있다. 이들 원전에서 생산한 전력은 국내 전력생산량의 31.5%를 차지한다. 2009년에는 아랍에미리트(UAE)에 3세대 한국표준형원전(APR1400) 4기를 건설하는 공사를 총 186억달러(21조원)에 따냈다. 세계 5번째 원전 수출국이 된 것이다.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고리 1호기 영구 정지 기념행사'에서 탈(脫)원전을 공식 선언했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우선, 탈원전으로 모자라는 에너지원을 당장 공급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태양열,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전력 부족은 전기요금 상승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2022년까지 모든 원전 폐쇄를 결정한 독일의 경우, 노후 원전 8기를 가동중지하기 직전인 2010년에 비해 2015년에 가정용, 산업용 전기요금이 각각 21%, 25% 올랐다.그동안 원전 국산화를 거듭하며 쌓아온 원전 건설·관리 기술과 인력, 경험도 모두 잃을 수 있다. 국내외 60개 대학 원자력 관련 교수 417명은 지난 5일 성명에서 "원전 운영과 건설로 지금까지 연간 36조2000억원의 생산유발, 9만2000명의 고용유발 효과가 발생했다"고 강조했다.이런 우려들이 불식되지 않은 상황에서 신고리 5, 6호기 건설공사가 일시 중단됐다. 정부는 3개월 간 공론화 과정을 거친 뒤 최종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스위스는 1984년 공론화 작업에 들어간 지 33년 만인 올해 5월에서야 탈원전을 결정했다. 한국 원전의 운명을 결정하기에는 100일도 안되는 시간은 너무 짧다.조영주 경제부 차장 yjcho@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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