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환의 지리산별곡⑦] 춤추는 숲, 춤추는 영혼

(산청군 운리~성심원)

[아시아경제]지리산의 깨어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고요속의 기지개, 그가 털고 일어나면서 나부끼며 흔들릴 아침안개,그리고 이파리들의 떨림으로 맺혔던 이슬이 풀잎에서 떨어지는그 찰나의 순간을 보고 싶었다.
이는 어쩌면 금기된, 오로지 지리산에서 삶을 지탱 해 내고 있는다람쥐와 토끼와 같은 순수 지리산가족들에게만 허락된 것이리라.그러나 잠시 그들과 내가 함께 되고자 한다는데 만류할 자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해가 바다 밑에서 이글거리기 전에 출발해야 한다. 금기된 모습의 관조를 위해서는 이정도의 수고는 수고가 아니다.
사월을 단지 며칠 남겨 두고 봄의 한가운데 서 있지만지리산 깊은 산자락 탑동마을은 아직도 한기가 돈다.이파리들은 몸서리치는 진한 추위와 고독 속에 한밤을 보냈을 것이다.
그 떨림의 한가운데 단속사(斷俗寺) 육층석탑만이 흔들림이 없었다.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나 홀로 고독하게 섰을 때 비로소 내가 보이고 안개 속에 털고 일어나는 지리산의 속살을 볼 수 있는 것이다.여기서부터는 나를 두고 떠나는 것이다.탑동마을과 단속사는 나를 두고 떠나는 장소이다.아니 나를 버리고 속세와 인연을 끊는 것이다.그래야 지리산이 보이고 진정한 나를 볼 수 있는 것이다.지금까지 보아왔던 나는 진정한 내가 아니다.오로지 이 단속사(斷俗寺)에 들어서서 이슬의 떨림 속에서 흔들림 없는 육층석탑과의 만남으로 나를 만나는 것이다. 지금까지 자신을 버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속세를 떠났을까?그 속세를 버리기 위해 차가운 이슬로도 움직임 없는 육층석탑을 따라 얼마나 돌고 돌았을까?
순간 탑동마을에 온기가 돈다. 엄마 품에 안긴 아기처럼 긴장이 풀려온다. 고독의 터널을 거닐어 본 자만이 환희의 꽃송이를 지르밟을 기회가 부여되는 것이리라.육층석탑 너머에서 지리산의 아침 해가 떨고 있는 이슬을 보듬는다.
태양의 아침터치가 세상을 깨우는 시간이다.그 단 한 번의 터치로 지리산은 깨어나기 시작했다.태양광선이 투과되는 이파리는 투명한 원색의 물결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이파리에서 가지로, 가지에서 몸통으로, 몸통에서 뿌리로....순간에 온 숲은 재잘거림으로, 뛰놂으로, 합창으로 생명이 넘쳐나기 시작했다.사월의 마지막 주말의 숲은 완전한 자유, 원색의 현란함, 원숙하지도 그렇다고 초년생으로 비린내 나지도 않은 충만함의 충만함이다.더하지도 덜하지도 안은 완전함이 숲을 채웠다.숲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덩달아 내 영혼도 춤을 춘다.
웅석봉까지 아름답게 뻗어 있는 임도를 따라 걷는 시간은걸음마다 에너지가 더 채워졌다. 발걸음을 옮길수록 능선은 길게 늘어지고 나의 시선은 그만큼 길어진다.계곡아래에의 수억, 수천억의 이파리들은 온갖 다른 칼라로 파도를 만들고 회오리를 만들어 거대한 초록 쓰나미가 되어 밀려온다. 바위틈의 늦게 핀 진달래를 따 입에 넣어 보기도 하고 손바닥에 놓고 흔들어 보기도 하고 까불어 보기도 한다. 작고 연약해 보이지만 그에게서 부드러움과 원숙함을 배운다.
숲에는 지배자도 피지배자도 없다. 산도, 나무도, 이파리도, 꽃도, 동물도 그 누구도 지배를 받거나 지배할 수 없다. 완전한 자유, 완전한 평등... 태초에 에덴동산의 모습이 그랬을지 않았을까?나무와 이파리의 배경이 된 둥근 산, 진달래를 부둥켜안고 있는 바위라고 하여 갑이 될 수 없다. 덩치가 크다고, 힘이 세다고 갑이 될 수 없다.작고 약하다고 을이 되는 것은 숲의 원리가 아니다.요즘 세상처럼 갑과 을의 관계는 오로지 세상의 일일 뿐이다. 내가 있음으로 네가 있고 네가 있음으로 내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위와 진달래, 둥근 산과 나무이파리의 관계다. 자연은 공평하기 이를 데 없다. 오르막만큼만 내리막이 있다. 웅석봉은 지리산 서쪽의 맏형 격이다. 그만큼 오르막길이 만만치 않다. 그만큼 내리막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오르막 만큼만은 내려가야 한다. 일종의 책임의식이다. 저 멀리 강이 보인다. 경호강이다. 큰 걸음을 떼면 강에 내 발이 닿을 것 같다. 경사가 급한 만큼 걸음은 느리다. 느린 걸음에 무릎을 꿇어야 볼 수 있는 꽃을 발견한다. 일명 “무릎꿇이 꽃”이다.
무릎을 꿇어야 볼 수 있는 꽃, 그 앞에 누군가 쌓아 올리고 있는 작은 돌탑에 손톱만한 작은 돌 하나를 올려놓는다. 내 뒤를 따르는 누군가가 올려놓을 자리를 비워놓은 채...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