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삶터] 한가위, 궁금증도 풍년

김희욱 리앤모로우 상무

민족의 대이동, 보름달, 황금들판… 추석을 연상시키는 단어들은 참 많다. 하지만 매년 명절마다 고개를 드는 '한국식 정(情)'의 표현이 때론 한숨을 자아내는 경우도 있으니. 직장에서 추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으레 오고 가는 질문들을 살펴볼 것 같으면 "이번에 고향 내려가나?"에서부터 "고향이 어디지?", "그럼 집에서 몇째야?" 같은 호구조사를 넘어 "시골에 땅 좀 있어?" 같은 맥락 없는 신상 캐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렇듯 원치 않는 관심을 뒤로하고 도착한 고향집에서는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로부터 또 질문 공세가 쏟아진다. "회사 어디 다니더라?", "직급은? 그럼 무슨 부서지?"라는 의미 없는 궁금증은 "지금 어디 살아?", "거기 학군은 어때?", "애들은 공부 잘 해?" 같은 민감한 주제로까지 침범을 하기에 이른다. 물론 반가움으로 포장된 단순한 안부인사로 볼 수도 있겠지만 최근 우리네 정서가 날로 척박해지다 보니 질문을 받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간혹 심사가 꼬이는 순간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남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로부터 보자마자 듣는 "요새 왜 이렇게 말랐어? 집에서 잘 안 해 줘? 상사가 괴롭혀?" 에서부터 "머리는 왜 그렇게 짧아?", "옷은 어디서 그런 걸 다 팔아?", "그 차 오래 타네? 언제 바꿀 거야?", "집 전세랬지? 기한이 언제야?", "그 집 아빠 무슨 일 한댔지?" 정도의 질문은 때로 상처가 되기도 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주변사람들이 잘 되는 걸 함께 응원하며 좋은 결과를 동기부여로 삼기보다는 잘 나가는 사람이 언젠가 실수하기를 기다리거나 남의 불행을 통해 상대적으로 나의 현실을 과대포장하려는 풍조가 생겨났다.  이제 추석 연휴가 지나면 연말까지 희망퇴직 신청의 계절이 시작된다. 비록 희망하는 사람에 한한 '자발적 퇴직'이라고는 하지만 때론 위와 같은 불편한 관심들을 공유하며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해온 동료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구성원들. 그들의 마음 속속이 '이제 다음은 내 차례인가' 하는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즉, 남에 대한 관심은 바로 나에 대한 불안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형제들 간의 그것을 시작으로 학교, 직장, 각종 모임에서 쉴 틈 없는 경쟁으로 얼룩져버린 인간관계에서는 이제 관심조차 어떤 '경계감'의 표현으로 진화했는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철학자 칸트(1724~1804)가 '선의지(善意志)'에서 규정했다시피 어떠한 경향성에 따르지 않고 상대방에 대해 순수하게 도덕적 견지에서 비롯된 관심이 얼마나 되는가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날 때마다 내 마음속의 '선의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여전히 일부 초등학교의 '가정환경 조사서'란에는 아버지 직업, 거주지 자가/전세/월세 여부, 자가용 유/무에 대한 항목이 있는데, 이 역시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학생의 '됨됨이'를 판단하는 근거로 악용하는 세태로 보여 안쓰러울 뿐이다. 이번 추석 연휴에는 모두가 '선의지'를 바탕으로 원하는 사람들과 한 해 수확과 기쁨을 나누는 하루하루가 되었으면 한다. 김희욱 리앤모로우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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