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 의리

 '술래잡기, 땅따먹기, 구슬치기….' 어린 시절 최고의 '의리'는 함께 놀아주는 것이었다. "○○○, 밥 먹어!" 엄마의 저녁밥 호출이 있기 전까지 아이들의 의리는 굳건했다. 해맑게 웃으며 마음껏 뛰어놀다 보면 하루가 갔고, 친구들과 다시 만날 내일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세상이 맑게만 보이던 그 시절, 의리를 지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초등학생이 됐을 때도 마찬가지다. 학교 운동장에서 뜀박질 경쟁도 해보고, 나란히 누워 구름의 움직임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경쟁의 고통을 몰랐던 시절이라 가능한 장면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이라는 시스템에 맞춰 살아가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세상의 작동원리를 깨닫게 되는 순간 '의리'라는 가치는 흔들린다. 의리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른 도리'다. 당연히 지켜야 할 덕목처럼 보이지만, 그래서 더 실천이 어렵다.  성공의 기쁨을 누리려면 곁에 있는 누군가를 밟고 일어서야 하는 현실, 균열은 그렇게 시작된다. 입시경쟁, 취업경쟁, 승진경쟁 등 삶 자체가 경쟁이다. 곁에서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이들은 동료이자 경쟁자다.  적당히 상대를 이용하고 약점을 활용하며 이득을 챙겨나가는 사람과 마음에도 없는 표정과 말투로 환심을 사려 노력하는 사람이 남보다 성공할 확률이 높은 게 현실이다. 누군가는 계속 손해를 보는 구조, 그 속에서 우직하게 의리를 지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정글의 생존법칙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연약한 초식동물의 모습, 세상이라는 거울에 비친 우리의 자화상이다. 하지만 한 계단 한 계단 위로 올라가 봐야 마음 편하게 살아갈 평화로운 초원은 나타나지 않는다. 더 강력하고 위협적인 육식동물이 먹잇감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이 거대한 울타리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성공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뻗어있는 고속도로에서 나와 흙먼지 풀풀 날리는 시골길로 들어서는 것은 어떤가. 왠지 돌아가는 길처럼 보이고, 어쩌면 원래의 목적지와 무관한 곳으로 향하는 선택이 될지도 모른다.  결과가 어떤 것이든 자신의 삶을 돌아볼 기회를 얻게 된다면 그 자체로 의미는 있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삶의 우선순위, 그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었는지 생각해보자. 불안한 현실, 더 암담한 미래를 걱정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성공을 향한 압박,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살아온 이들이 대부분이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수많은 인연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잊은 채 앞만 보며 달려가는 삶이 행복할 수 있겠는가. 세상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의 부속품이 돼버린 삶에 '인간의 가치'는 스며들기 어렵다.  류정민 사회부 차장 jmr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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