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으로 풀어낸 햄릿' 극단 여행자 연출가 양정웅

[런던=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연출가 양정웅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다" 막이 오르자마자 햄릿의 유명한 독백이 시작됐다. 원래는 3막1장의 대사다. "연극은 질문이다. 햄릿처럼 스스로가 수용할 수 없는 고통의 상태를 관객들에게 묻고 싶었다. 어쩌면 단도직입적인 질문에서 해학을 느낄 수도 있다."이미 2005년부터 에딘버러, 바비칸 센터, 글로브 극장 등에서 셰익스피어의 연극 '한여름 밤의 꿈'으로 영국에서 다섯 차례 공연을 해 왔던 극단 여행자의 연출가 양정웅씨가 이번엔 '햄릿'을 런던 무대에 올렸다. 독살당한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를 향한 원망, 숙부를 향한 분노, 애인 오필리어의 익사 그리고 햄릿 자신의 파멸. 죽음으로 얼룩진 비극을 전통 굿으로 풀어낸 '양정웅표 햄릿'이다. 원작에선 햄릿이 아버지의 혼령을 만나지만, 이번 공연에선 무당들이 아버지의 영매(靈媒)가 돼 억울함을 호소했다. 죽은 자를 위한 '진오귀굿'이 펼쳐지는 대목이다. 극 중 햄릿의 연인 오필리어는 실연과 부친의 죽음으로 미쳐서 물에 빠져 자살한다. 이어 그녀를 극락으로 인도하는 '수망굿'이 등장한다. 햄릿이 오필리어의 오빠 레어티즈와 검술 대결을 벌이며 독이 묻은 칼에 상처를 입고 죽어 갈 때는 ‘산진오귀굿’이 나온다. 지난 13일(현지시각) 런던에서 만난 양씨는 "극을 준비하면서 만신(萬神)을 만나 굿을 배우며 이를 연기로 표현하려 배우들과 훈련했었다. 늘 공연에서 한국적인 것들을 표현하려고 했는데 무속을 알게 되면서 우리 전통에 대해 '그동안 피상적인 것들만 알고 있었구나'하는 반성도 느꼈다"며 "5000년 동안 우리 땅에서 이어져 왔던 무속의 본질이 무엇인지 더 알고 싶다"고 말했다. 양씨가 서양 희곡작품에 우리나라 전통의 옷을 입혀 실험적 연극을 올려온 건 십수년이 돼간다. 특히 그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새로운 연극으로 선보여 왔다. 양씨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무엇보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며 "그만큼 열린 텍스트이기에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고 일상적 이미지가 아닌 초현실적이면서 어느 나라의 전통이나 문화와도 결합이 가능하다는 매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동안 '로미오와 줄리엣', '리어왕', '한여름밤의 꿈', '맥베스', '십이야', '햄릿' 등 총 6편의 셰익스피어 작품들을 연극으로 올렸다. 앞으로도 '페리클레스', '태풍', '리처드 3세' 등 작품들을 공연하는 데 욕심을 내고 있다. 동양의 전통으로 재해석한 이번 '햄릿' 공연에서 관람객들은 맨발로 뛰는 배우들의 현란한 몸짓과 코믹스러운 연기에 비극의 진지하고 무거움을 잊어버린 듯 때때로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또한 광기를 품은 햄릿이 과거의 삶을 버리고 새로 태어난 듯 복수를 결심하며 전신 탈의를 감행, 검은색 상복을 하얀색 추리닝으로 갈아입는 장면에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반항아의 상징적 장치인 흰색 추리닝을 입는 햄릿을 생각해보면 그의 상태는 이미 도를 넘어서 있는 것 같았죠. '햄릿' 작품 이후엔 셰익스피어가 작품을 통해 말하려는 본질이 무엇인지 더욱 고민하게 되요."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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