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채은기자
글로벌 경제 매트릭스 유럽편
[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구리수(그리스)는 조상 덕에 지중해에 경치 좋은 집을 가지고 있어 가끔 놀러 오는 관광객들 짐을 날라 주면서 근근이 먹고 산다. 온 동네에 외상을 얻어 빚쟁이다. 옛날에 빚을 떼먹고 야반도주 하기도 해 인심도 잃었다. 하지만 구리수는 믿는 구석이 있다. 사촌 도길이(독일) 형이 국회의원이기 때문이다. 천지분간이 안되는 구리수는 도길이 형을 믿고 빌린 돈을 펑펑 쓴다.”임형록 한양대 교수의 책 ‘글로벌 경제 매트릭스-유럽편’의 한 대목이다. 유럽 재정위기 당시 그리스와 독일의 관계를 재밌게 빗대었다. 지난 4월10일 그리스는 4년 만에 국채 시장에 돌아왔다. 5년 만기 국채 30억 유로어치(약 3조3200억원)를 발행했다. 금리는 예상보다 낮은 4.95%. 시장은 환호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투자자들이 (국채 매입을 통해) 그리스를 용서한 것은 유럽 재정 위기 암흑기 이후 그리스를 포함한 재정 불량국 상황이 크게 개선된 현실을 보여준다"고 언급했다.하지만 시계를 조금만 되돌려보아도 그리스는 유럽 재정위기의 '진앙지'였다. 2011년말 그리스의 10년 만기 국채 이자율은 연 35% 이상 솟구쳤다. 2012년 말 GDP 대비 정부부채비율은 170%에 도달했다. 유럽연합(EU), 유로존, 국제통화기금(IMF) '트로이카'가 달려들어 그리스를 지원했다. 이 책은 그리스로 촉발된 유럽 재정위기의 출발과 진행과정을 돋보기를 들고 세밀하게 풀어냈다. 유럽재정위기를 이해하기 위한 단초인 재정과 국채에 대한 기초적인 개념 설명에서부터 시작해 유럽연합(EU)의 탄생과정과 유로존의 구조적 위기를 밀도 있게 녹였다. 저자는 유로존을 '친목계'에 빗대어 설명한다. 유로존의 계원은 총 17개국으로 같은 동네 친구들이다. 가난한 나라는 유로존 가입을 통해 부자 나라에 기대어 신용을 얻었다. 신용우산 덕에 국채 이자율도 낮아진다. 갑자기 졸부가 된 셈이다. 가난했던 나라는 흥청망청 국채를 발행해 사업을 벌이고 선심성 복지정책을 쏟아낸다. '도덕적 해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비용은 모든 계원들이 나눠 부담해야 한다. 친목계가 죽고 사는 사(死)생계로 바뀌는 수순이다. '국채'에 대한 알기쉬운 개념풀이도 눈에 띈다. 국가의 가장 큰 손인 정부가 돈을 확보하는 수단은 크게 국채와 세금이다. 지하경제가 발달한 나라에서 조세로 돈을 확보하기 어렵고, 조세저항도 만만치 않아 국채에 의존하기 쉽다. 이에 그리스 정부는 국채를 발행하게 된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위기로 그리스의 관광산업과 선박산업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갚을 수 없는 나라 빚이 쌓여가고, 그리스만의 위기는 유럽 전체의 위기로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다. 유로존을 둘러싼 복잡한 쟁점들을 알기 쉽게 입체적으로 다룬 점은 이 책의 큰 장점이다. 저자는 들어가는 말에서 "유럽을 하나의 객체로 담아내긴 여간 쉽지 않다. 아주 많은 나라들이 무수히 분열과 통합을 반복해 그 사설들이 복잡하고 다난할 수 밖에 없다"면서 "유럽 대륙의 경제적 갈등과 힘의 충돌 그리고 눈물자국 어린 이야기들을 차곡차곡 쌓았다"고 말한다. <'글로벌 경제 매트릭스 유럽 편'/임형록 지음/도서출판 새빛 출간/값 1만8000원>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