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日野話]퇴계도 '이요루' 詩를 지었다(42)

빈섬의 스토리텔링 - 퇴계의 사랑, 두향(42)
"그 앞에서 말을 멈추었을 때, 개천과 길에 안개가 아득하여 도끼자루를 썩일 듯한 선경(仙境)의 오묘한 생각이 떠오르곤 하였다. 이러한 절경(絶境)인데 아직 이름이 없는지라 단구협(丹丘峽)이라 명칭을 붙여주었다. 단구협으로부터 동쪽을 향하면 산은 더욱 기이하고 물은 더욱 맑았다. 10리를 가면 산협이 끝나는데, 마치 아름다운 여인과 헤어지는 듯이 열 걸음에 아홉 차례나 돌아보곤 하였다. 거기서 동쪽으로는 적성(赤城)이 지척으로 바라보이고, 강가에 나루터가 있는데, 작은 배로 가로질러 가면 하진(下津)이었다. 나루를 따라 오르면 10여리에 상진(上津)이 있다. 철벽(鐵壁)같은 천 길의 바위 벼랑이 물길을 높은 곳에서 압도하고 나의 마음까지 겁나게 하였다. 여기를 서골암(棲?巖)이라 이름하였다. 하진 못 가서 폭포가 남쪽에서 내려오는데, 옛 이름은 남천(南天)이었다.  남천 왼편 언덕에 누(樓)가 나는 듯이 섰지만, 날이 이미 어두웠으므로 오르지 못하고 드디어 군의 관사에 투숙하였다. 그 이튿날이었다. 군수 황후(黃侯) 인(璘)이 누에 오르기를 청했다. 제비는 날고, 닭은 벌레를 쪼며, 까치는 울고, 봉우리엔 구름이 걸렸고 가을빛은 비단을 펼친 듯하였다. 그리고 층층의 산봉우리가 병풍처럼 누각을 둘렀고, 남천 물이 난간 밑에 소리내어 우는데, 상진(上津)의 물이 숲 속에 모여들어, 어제 말과 배 위에서 보던 계곡 풍경이 모두 술잔과 의자 사이에 벌어져 있으니, 두 눈으로 보는 것이 두 발로 지금껏 얻은 것보다 많았다. 바람벽 사이를 보니, 비해당(匪懈堂ㆍ안평대군)이 쓴 이요루(二樂樓)라는 커다란 세 글자가 찬란히 밝은 밤하늘 명월(明月)과 같아서, 그 광채를 움켜잡을 수가 없는데 산개울이 햇빛을 머금었다. 그 기쁨이 견디기 어려웠다." 김일손(金馹孫)의 '이요루기' 중에서  단양 사또 퇴계는 거의 매일 이요루에 올라가 김일손이 저토록 감동받은 물소리를 실컷 들었을 것이다. 왜 시흥이 돋지 않았겠는가. '이요루'란 제목으로 쓴 퇴계의 시 한 편이 남아있다. 그의 당시 삶이 그림같이 드러나는 생생한 시이다. 밤에 누우니 단양 관아는 맑구나꿈에 산을 거니는 시를 지었네새벽에 일어나 탁 트인 개울가 누대에 올라산을 바라보며 옛글을 읊네적성의 산속에 사는 신선이하늘을 거닐며 구름깃발을 가지고 놀면서내게 황정초(불로장생의 명약)를 주면서일을 그르치지 말라고 하네세상 모든 일은 헌신짝 하나인데어찌 속임수 따르는 것을 배움으로 삼겠는가이미 기공빈(벼슬을 버린 사람)을 불렀거늘주도추(주지사가 부르자 말없이 나가버린 사람)가 이상하다 마오나는 티끌세상 그리워하는 이가 아니오또한 세상의 모양새에 아첨하지도 않소여기에 몸 담궈 미적미적 결단 못 내리고내 수레에 언제 기름칠할까내 들으니 인륜도덕 가운데마음의 법도는 터럭 한 올도 조심하라던데이요루에서 즐길 것을 얻은 것 같으니이 밖에 내가 뭘 더 알겠는가 夜臥郡齋淸(야와군재청) 夢作遊山詩(몽작유산시)晨登溪樓敞(신등계루창) 對山吟古詞(대산음고사)赤城山中仙(적성산중선) 游天弄雲旗(유천농운기)貽我黃精草(이아황정초) 約我勿差池(약아물차지)萬事一??(만사일폐시) 胡爲學詭隨(호위학궤수)已呼祈孔賓(이호기공빈) 莫訝朱桃椎(막아주도추)我非戀塵土(아비연진토) 亦非媚俗姿(역비미속자)淹玆久不決(엄자구불결) 我車何時脂(아차하시지)吾聞名敎中(오문명교중) 心法謹毫?(심법근호리)二樂如得樂(이요여득요) 此外吾何知(차외오하지)<계속>▶이전회차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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